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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륜(曺錫倫)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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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이서(彛敍)
생년1765(영조 41)
졸년1837(헌종 3)
시대조선후기
본관창녕(昌寧)
활동분야문신
조우진(曺羽振)

[상세내용]

조석륜(曺錫倫)
1765년(영조 41)~1837년(헌종 3).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이서(彛敍)이다.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부사(府使) 조전주(曺殿周)의 후손이며, 고조는 참봉(參奉) 조하언(曺夏彦)이고, 증조부는 목사(牧使) 조명종(曺命宗)이며, 조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청주진관병마절제도위(淸州鎭管兵馬節制都尉) 조윤적(曺允迪)이다. 부친 통훈대부(通訓大夫) 전행의금부도사(前行義禁府都事) 조우진(曺羽振)과 모친 진사(進士) 김병연(金秉淵)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승지(承旨) 이면수(李勉修)의 딸이다.

1798년(정조 22) 식년시에서 진사에 합격하였다. 이후 음보(蔭補)로 벼슬살이를 시작하였다.

1808년(순조 8)에 영양현감(英陽縣監)으로 재직 중에 주자(朱子)의 영당(影堂)을 훼손한 일이 있었는데, 이 일을 계기로 유생들이 합심하여 탄핵을 아뢰는 상소를 올렸다. 이로 말미암아 거제부(巨濟府: 현 경상남도 거제시)에 있는 섬으로 유배되었다.

1809년(순조 9)에 조석륜(曺錫倫)의 아내가 부친 조우진이 연로하므로 석방해줄 것을 청원하였다. 그의 행위는 사면받을 수 없는 죄목에 해당하였지만, 효(孝)의 실천이 더 중요하다는 이유로 유배지에서 풀려나왔다.

그의 묘는 현재 경기도 여주군(驪州郡)에 있다.

[참고문헌]

CD-ROM 사마방목(司馬榜目)
조선왕조실록(순조)
진신보(搢紳譜)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