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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후(金𨩿)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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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수민(秀民)
생년1765(영조 41)
졸년1821(순조 21)
시대조선후기
본관연안(延安)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재혁(金載奕)

[상세내용]

김후(金𨩿)
1765년(영조 41)∼1821년(순조 21).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수민(秀民).

부친은 통덕랑(通德郞) 김재혁(金載奕)이다.

1798년(정조 22) 진사가 되고, 1800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에 등용된 뒤 전적을 거쳐, 1803년 지평으로 있을 때 영의정 이병모(李丙模)를 몰염치한 자라 비난하였고 이에 홍문관수찬 이동환(李東煥)도 동조하자, 당시 수렴청정을 하고 있던 정순왕후(貞純王后)에 의하여 남해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이병모가 그를 석방시킬 것을 청하였으므로 1805년 방환되었다.

1809년 부수찬 겸 금위영종사로 복직되었으나, 1811년 당시의 비정을 직간했다가 군위현(軍威縣)에 유배되었으며, 그뒤 관직이 대사간에까지 이르렀다. 천품이 영특하고 기개가 있었으며 문장에 능하였다.

정사에 임하여서는 정성을 다하였다. 안동사람들은 새로 수령을 맞이할 때는 김후 같은 인물을 얻기를 바랐다고 한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純祖實錄
國朝榜目
梅山集

[집필자]

오성(吳星)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