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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겸(李象謙)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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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이홍겸(李弘謙)
생년1764(영조 40)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문신
이동수(李東洙)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상겸(李象謙)
1764년(영조 40)~미상, 조선 후기 문신. 초명은 이홍겸(李弘謙)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증조부는 이시현(李蓍顯)이고, 조부는 이덕제(李德濟)이다. 부친 이동수(李東洙)와 모친 임재천(任載天)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792년(정조 16) 식년시 생원 3등 39위로 입격하였고, 1796년(정조 20) 33세로 별시 병과 1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유원명(柳遠鳴)의 천거로 주서천(注書薦)에 뽑히게 되었다. 순조 즉위년인 1800년(정조 24)에는 홍문록(弘文錄)‧도당록(都堂錄)에 이름을 올렸다. 순조가 즉위하자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으로서 시파(時派) 인물이었던 김이익(金履翼)‧김이재(金履載)‧서유린(徐有隣) 등이 임금에게 항상 불만을 품고 무시하였다며 탄핵하였다. 이후 주로 시파를 고발하는 내용의 상소를 많이 올렸다.

1801년(순조 1)에는 정조 때의 총신 박종악(朴宗岳) 등이 천주교도 홍낙임(洪樂任)과 내통하였다며 고하였다. 정조조에 대사간(大司諫)‧형조판서(刑曹判書) 등을 지낸 이재학(李在學)이 산역공사를 지연시켰다는 죄목으로 처벌을 건의하였다. 같은 해에 천주교 신자 이총억(李寵億)이 붙잡히자 그의 부친 좌승지(左承旨) 이기양(李基讓) 또한 천주교 신자라며 처벌할 것을 주장하였다. 또한, 사도세자(思悼世子)와 숙빈 임씨(淑嬪林氏)의 아들인 은언군(恩彦君) 이인(李裀)의 부인과 며느리가 천주교 신자이며 신자들을 숨겨주었고, 청나라 신부 주문모(周文謨)로부터 영세를 받았다는 것이 발각되자 이인이 음모의 주동자라며 홍낙임과 함께 처벌할 것을 청하였다. 1802년(순조 2) 순조의 친정이 시작되자 벽파에 대한 반격이 가해져, 정순왕후의 형제들인 김용주(金龍柱)‧김관주(金觀柱)등 벽파의 인물과 함께 벽파의 여론을 주도했던 권유(權裕)의 무리로 지목되어 탄핵되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손용석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