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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운(金養運)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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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치유(穉幼)
자(字)치공(穉功)
호(號)제음(霽陰)
생년1764(영조 40)
졸년1824(순조 24)
시대조선후기
본관의성(義城)
활동분야학자 > 성리학자

[상세내용]

김양운(金養運)
1764년(영조 40)∼1824년(순조 24). 조선 후기 성리학자. 자는 치유(穉幼)‧치공(穉功)이고, 호는 제음(霽陰)이다. 본관은 의성(義城)이고, 본적은 경상북도 안동시(安東市)이다.

부친은 김시여(金始畬)이고,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은 김목운(金穆運)이다. 부인은 이광윤(李光胤)의 딸 선성이씨(宣城李氏)이다.

김낙행(金樂行)에게 수학하면서 퇴계학파(退溪學派) 중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을 필두로 한 학봉학단(鶴峰學團)의 일원이 되었다.

1803년(순조 3) 증광시 생원 1등 4위로 합격하였다.

1816년(순조 16) 부사(府使) 윤노동(尹魯東)이 향음주례(鄕飮酒禮)를 시행하였는데, 그때 집례(執禮)를 맡아 모든 절차를 지시하였다. 이후 유림활동과 후학 양성에 매진하였다.

제산(霽山) 김성탁(金聖鐸)‧구사당(九思堂) 김낙행(金樂行)의 문집간행업무를 전담하였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韓國精神文化硏究院)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