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점(吳霑)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624C810FFFFB1764X0 |
자(字) | 시지(時之) |
호(號) | 청파(靑坡) |
생년 | 1764(영조 40) |
졸년 | 1856(철종 7)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화순(和順) |
활동분야 | 예술‧체육 > 서예가 |
부 | 오재권(吳載權) |
출신지 | 제주도 제주시(濟州市) |
저서 | 『연상루중수상량문(延祥樓重修上梁文)』 |
저서 | 『망경루개건상량문(望京樓改建上梁文)』 |
저서 | 『동문상량문(東門上梁文)』 |
[상세내용]
오점(吳霑)
1764년(영조 40)∼1856년(철종 7). 조선 후기의 서예가로, 자는 시지(時之)이고, 호는 청파(靑坡)이다. 본관은 화순(和順)이며, 출신지는 제주도 제주시(濟州市)이다.
부친은 오재권(吳載權)이다.
1786년(정조 10) 병오 식년시 생원 3등 3위로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生員)이 되었으나 벼슬길에는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서예에 전심하여 송설체(松雪體)를 중시하였다. 특히 금석서(金石書)에 정통하였다. 또한 문장이 뛰어나 공사문(公私文)을 많이 썼다.
그는 『연상루중수상량문(延祥樓重修上梁文)』‧『망경루개건상량문(望京樓改建上梁文)』‧『동문상량문(東門上梁文)』 등을 남겼다.
부친은 오재권(吳載權)이다.
1786년(정조 10) 병오 식년시 생원 3등 3위로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生員)이 되었으나 벼슬길에는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서예에 전심하여 송설체(松雪體)를 중시하였다. 특히 금석서(金石書)에 정통하였다. 또한 문장이 뛰어나 공사문(公私文)을 많이 썼다.
그는 『연상루중수상량문(延祥樓重修上梁文)』‧『망경루개건상량문(望京樓改建上梁文)』‧『동문상량문(東門上梁文)』 등을 남겼다.
[참고문헌]
왕조실록
제주사인명사전
제주실기
제주풍아
증보탐라지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index.jsp)
제주사인명사전
제주실기
제주풍아
증보탐라지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index.jsp)
[집필자]
전종헌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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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30 | 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