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원(朴時源)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C15C2DCC6D0B1764X0 |
자(字) | 치실(穉實) |
호(號) | 일포(逸圃) |
생년 | 1764(영조 40) |
졸년 | 1842(헌종 8)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반남(潘南)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박사표(朴師豹) |
[관련정보]
[상세내용]
박시원(朴時源)
1764년(영조 40)∼1842년(헌종 8).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치실(穉實), 호는 일포(逸圃). 박사표(朴師豹)의 아들이다. 영천(榮川: 지금의 영주)에서 살았다.
1798년(정조 22)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 벼슬이 사간에 이르렀다. 천성이 진중(鎭重)하고, 마음이 진정되어 늘 평온하며, 몸가짐과 행동거지가 겉으로 꾸미는 일이 없었다.
그러므로 조정에서 벼슬을 내리는 제명(除命)이 있으면 사양하는 관례와는 달리 즉시 명을 받들어 부임하였으며, 비록 남들이 꺼리고 싫어하는 용반산직(冗班散職)이라 할지라도 직무를 완수하는 데 있는 힘을 다하였다.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이룩될 때에 조용히 향리로 돌아와서 유학연구에 몰두하였다.
또 학문을 매우 좋아하여 후배들을 지도하고 가르칠 때는 항상 강학을 우선적으로 하였다. 영천에 있는 이산서원(伊山書院)이 강학을 오래 폐지하였는데, 그가 동향인 이인행(李仁行)과 함께 학름(學廩)을 정비하고 매년 가을과 겨울에 『주서(朱書)』‧『근사록(近思錄)』‧『심경(心經)』 등을 통독함으로써 서원의 옛 규정을 회복하였다.
저서로는 『일포집』 8권이 전해진다.
1798년(정조 22)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 벼슬이 사간에 이르렀다. 천성이 진중(鎭重)하고, 마음이 진정되어 늘 평온하며, 몸가짐과 행동거지가 겉으로 꾸미는 일이 없었다.
그러므로 조정에서 벼슬을 내리는 제명(除命)이 있으면 사양하는 관례와는 달리 즉시 명을 받들어 부임하였으며, 비록 남들이 꺼리고 싫어하는 용반산직(冗班散職)이라 할지라도 직무를 완수하는 데 있는 힘을 다하였다.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이룩될 때에 조용히 향리로 돌아와서 유학연구에 몰두하였다.
또 학문을 매우 좋아하여 후배들을 지도하고 가르칠 때는 항상 강학을 우선적으로 하였다. 영천에 있는 이산서원(伊山書院)이 강학을 오래 폐지하였는데, 그가 동향인 이인행(李仁行)과 함께 학름(學廩)을 정비하고 매년 가을과 겨울에 『주서(朱書)』‧『근사록(近思錄)』‧『심경(心經)』 등을 통독함으로써 서원의 옛 규정을 회복하였다.
저서로는 『일포집』 8권이 전해진다.
[참고문헌]
逸圃集
定齋集
定齋集
[집필자]
이원균(李源鈞)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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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