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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겸회(李謙會)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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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겸지(謙之)
생년1762(영조 38)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무신
이훤(李烜)
생부이영(李瑩)

[상세내용]

이겸회(李謙會)
1762년(영조 38)~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겸지(謙之)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거주지는 한양이다.

계림군(桂林君) 이류(李瑠)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완춘군(完春君) 충양공(忠襄公) 이수량(李遂良)이고, 조부는 완은군(完恩君) 통제사(統制使) 이은춘(李殷春)이며, 부친은 이훤(李烜)이다. 생부는 이영(李瑩)이고, 외조부는 부사(府使) 조영항(趙榮恒)이며, 처부는 군수(郡守) 성옥(成玉)이다.

무과에 급제한 후, 낙안군수(樂安郡守)‧공충도수군절도사(公忠道水軍節度使)‧공청도병마절도사(公淸道兵馬節度使) 등을 역임하였다.

1788년(정조 12) 고과점수에서 중간 점수밖에 못 받았지만 완춘군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내용을 삭제 받았다. 1799년(정조 23) 낙안군수 재임 시절 평소 겉치레를 중시하여 백성으로부터 마구 거둬들인 재물로 사치에 힘을 써 고을 백성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의 상소로 인해 조정에 알려져 파직되었다. 1826년(순조 26) 공충도수군절도사로 재직 중, 충청북도 청주(淸州)의 북성문(北城門)에 조정에 대한 불만을 담은 흉서(凶書)가 걸려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관찰사 김학순(金學淳)에게 전달하였는데, 이 일이 조정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이 사건이 경기도 안성(安城)의 유성호(柳性浩)라는 인물이 연계된 사실을 알아내었지만 계문을 너무 늦게 조정에 알렸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가, 바로 파직이 취소되었다.

[참고문헌]

武譜
正祖實錄
純祖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