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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화(趙晉和)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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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관지(寬之)
생년1762(영조 38)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풍양(豊壤)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조진화(趙晉和)
1762년(영조 38)∼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관지(寬之)이다. 본관은 풍양(豊壤)이다.

증조부는 조재행(趙載行)이고, 조부는 조종진(趙宗鎭)이다. 부친 조운기(趙雲紀)와 모친 임득호(林得浩)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800년(정조 24) 별시문과 병과로 급제하였다. 1803년(순조 3) 홍문록(弘文錄) 3점(三點) 21인 중 한 사람으로 선발되었다. 1806년(순조 6) 교리(校理)로서 행위가 불손한 신하를 비판하였고, 시독관(侍讀官)으로서 『국조보감(國朝寶鑑)』 제3권을 임금과 강독하였다. 1809년(순조 9) 순천부사로 파견되어 곤궁한 백성을 구휼하고 진휼하는 데 힘썼다. 1821년(순조 21) 동궁 행례 때의 공로로 품계가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1824년(순조 24) 외직인 황해도관찰사에 임명되었다. 1827년(순조 27)과 1828년(순조 28)에는 대사간(大司諫)을 지내며 언론 활동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참고문헌]

純祖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김혜영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