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홍원(蔡弘遠)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C44D64DC6D0B1762X0 |
자(字) | 이숙(邇叔) |
생년 | 1762(영조 38)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평강(平康)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채제공(蔡濟恭) |
생부 | 채민공(蔡敏恭) |
[상세내용]
채홍원(蔡弘遠)
1762년(영조 38)∼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이숙(邇叔).
청하현감 채민공(蔡敏恭)의 아들이며, 정조 때 영의정을 지낸 채제공(蔡濟恭)에게 입양되었다.
1792년(정조 16)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정자가 되고, 이어 이조참의‧승정원승지 등을 지냈다.
1801년(순조 1) 수렴청정하던 대왕대비 정순왕후(貞純王后) 김씨(金氏)의 시파(時派)에 대한 탄압으로 말미암아 파직되고, 이듬해 온성으로 유배되었다.
1805년 귀양이 풀려 부호군에 임용되었다. 채제공의 신원(伸寃)을 위해 수차례 죄를 입었고, 1819년(순조 19)에 풀려나와 1825년(순조 25)에 가선대부(嘉善大夫) 형조참판(刑曺參判)에 제수되었다.
일찍이 정약용(丁若鏞)‧이유수(李儒修)‧한치응(韓致應)‧윤지눌(尹持訥)‧신성모(申星模) 등과 죽란시사(竹蘭詩社)를 결성하여 교유하였고, 정조의 명을 받아 『영남인물고』를 편술하기도 하였다.
청하현감 채민공(蔡敏恭)의 아들이며, 정조 때 영의정을 지낸 채제공(蔡濟恭)에게 입양되었다.
1792년(정조 16)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정자가 되고, 이어 이조참의‧승정원승지 등을 지냈다.
1801년(순조 1) 수렴청정하던 대왕대비 정순왕후(貞純王后) 김씨(金氏)의 시파(時派)에 대한 탄압으로 말미암아 파직되고, 이듬해 온성으로 유배되었다.
1805년 귀양이 풀려 부호군에 임용되었다. 채제공의 신원(伸寃)을 위해 수차례 죄를 입었고, 1819년(순조 19)에 풀려나와 1825년(순조 25)에 가선대부(嘉善大夫) 형조참판(刑曺參判)에 제수되었다.
일찍이 정약용(丁若鏞)‧이유수(李儒修)‧한치응(韓致應)‧윤지눌(尹持訥)‧신성모(申星模) 등과 죽란시사(竹蘭詩社)를 결성하여 교유하였고, 정조의 명을 받아 『영남인물고』를 편술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純祖實錄
國朝榜目
萬姓大同譜
純祖實錄
國朝榜目
萬姓大同譜
[집필자]
한영국(韓榮國)
명 : "홍원(弘遠)"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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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