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언섭(洪彦燮)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64DC5B8C12DB1745X0 |
자(字) | 원리(元理) |
생년 | 1745(영조 21)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남양(南陽[唐]) |
활동분야 | 문신 |
부 | 홍상정(洪相鼎) |
[상세내용]
홍언섭(洪彦燮)
1745년(영조 21)~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원리(元理)이다. 본관은 남양(南陽[唐])이고, 거주지는 한양(漢陽)이다.
부친은 홍상정(洪相鼎)이다.
1774년(영조 50) 식년시에 생원 2등 24위로 합격하였다.
1787년(정조 11) 천안군수(天安郡守)로 재직 중 문효세자(文孝世子)의 승하 소식을 접하고 벼슬을 버린 뒤 조정에 올라와 자정(自靖)의 의리로서 임지에 내려가지 않았다. 이에 왕이 거듭 물러날 것을 명하였으나, 꼼짝하지 않았고, 이후 임지(任地)였던 곳에 귀양 보내졌다가 곧 풀려나게 되었다. 1789년(정조 13)에 재차 다시 벼슬아치의 명부에서 자신의 이름을 삭제해주도록 상소하였으나 왕이 허락하지 않았다.
부친은 홍상정(洪相鼎)이다.
1774년(영조 50) 식년시에 생원 2등 24위로 합격하였다.
1787년(정조 11) 천안군수(天安郡守)로 재직 중 문효세자(文孝世子)의 승하 소식을 접하고 벼슬을 버린 뒤 조정에 올라와 자정(自靖)의 의리로서 임지에 내려가지 않았다. 이에 왕이 거듭 물러날 것을 명하였으나, 꼼짝하지 않았고, 이후 임지(任地)였던 곳에 귀양 보내졌다가 곧 풀려나게 되었다. 1789년(정조 13)에 재차 다시 벼슬아치의 명부에서 자신의 이름을 삭제해주도록 상소하였으나 왕이 허락하지 않았다.
[참고문헌]
[집필자]
유치석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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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