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일(李復一)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BCF5C77CB1745X0 |
이명(異名) | 이기철(李起哲) |
자(字) | 중심(仲心) |
생년 | 1745(영조 21)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문신 |

부 | 이상로(李商輅) |

[상세내용]
이복일(李復一)
1745년(영조 21)~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중심(仲心)이고, 다른 이름은 이기철(李起哲)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증조부는 이현행(李顯行)이고, 조부는 이의중(李毅中)이며, 부친은 이상로(李商輅)이다. 외조부는 홍계구(洪啓九)이고, 처부는 홍봉한(洪鳳漢)이다.
1775년(영조 51) 정시에서 병과 14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그러나 이복일(李復一)의 부친 이상로와 당시 세손인 정조의 즉위를 반대한 홍인한(洪麟漢)과의 관계가 문제가 되었고, 결국 부친이 역적으로 몰리면서 자신의 문과 급제도 취소되었다. 더불어 당진현(唐津縣)에 유배되었다. 1782년(정조 6) 영조를 세실로 모시고 원자의 호칭을 정하게 된 경사를 맞아 왕의 명으로 사면되었으며, 이름을 이기철(李起哲)로 고쳤다. 그러나 부친의 억울한 누명이 밝혀져 신원(伸寃)되었고, 취소되었던 문과 급제도 복과(復科)되었다.
증조부는 이현행(李顯行)이고, 조부는 이의중(李毅中)이며, 부친은 이상로(李商輅)이다. 외조부는 홍계구(洪啓九)이고, 처부는 홍봉한(洪鳳漢)이다.
1775년(영조 51) 정시에서 병과 14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그러나 이복일(李復一)의 부친 이상로와 당시 세손인 정조의 즉위를 반대한 홍인한(洪麟漢)과의 관계가 문제가 되었고, 결국 부친이 역적으로 몰리면서 자신의 문과 급제도 취소되었다. 더불어 당진현(唐津縣)에 유배되었다. 1782년(정조 6) 영조를 세실로 모시고 원자의 호칭을 정하게 된 경사를 맞아 왕의 명으로 사면되었으며, 이름을 이기철(李起哲)로 고쳤다. 그러나 부친의 억울한 누명이 밝혀져 신원(伸寃)되었고, 취소되었던 문과 급제도 복과(復科)되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유치석
수정일 | 수정내역 |
---|---|
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