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식(李東埴)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동식(李東埴)
1745년(영조 21)~미상. 조선 후기 유생. 본관은 함평(咸平)이다.
증조부는 이경운(李景蕓)이고, 조부는 이휘항(李彙恒)이다. 부친 이형직(李衡直)과 모친 남후명(南厚明)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783년(정조 7) 증광시 문과에서 을과로 급제하였다. 대신(大臣)들은 이동식(李東埴)이 역적인 이경래(李京來)와 가까운 친족이므로, 급제 기록을 삭제하고 섬으로 유배를 보내야 한다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정조는 그가 먼 친척에 해당하므로 유배는 지나친 처사라고 반문하고,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간원(司諫院) 및 사헌부(司憲府)에서도 그에 대한 죄목을 지적하며 유배를 간청하였고, 대신들 또한 지속적으로 처분을 간청하였다. 이에 정조는 처분을 윤허하였다가 곧 유배 명령을 정지시켰으며, 그가 이경래와는 촌수 밖의 친족임을 강조하고, 과거의 합격 사실을 복권해주었다.
증조부는 이경운(李景蕓)이고, 조부는 이휘항(李彙恒)이다. 부친 이형직(李衡直)과 모친 남후명(南厚明)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783년(정조 7) 증광시 문과에서 을과로 급제하였다. 대신(大臣)들은 이동식(李東埴)이 역적인 이경래(李京來)와 가까운 친족이므로, 급제 기록을 삭제하고 섬으로 유배를 보내야 한다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정조는 그가 먼 친척에 해당하므로 유배는 지나친 처사라고 반문하고,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간원(司諫院) 및 사헌부(司憲府)에서도 그에 대한 죄목을 지적하며 유배를 간청하였고, 대신들 또한 지속적으로 처분을 간청하였다. 이에 정조는 처분을 윤허하였다가 곧 유배 명령을 정지시켰으며, 그가 이경래와는 촌수 밖의 친족임을 강조하고, 과거의 합격 사실을 복권해주었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正祖實錄
正祖實錄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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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