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학(李在學)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C7ACD559B1745X0 |
자(字) | 성중(聖中) |
호(號) | 지포(芝浦) |
시호(諡號) | 익헌(翼憲) |
생년 | 1745(영조 21) |
졸년 | 1801(순조 1)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용인(龍仁)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숭우(李崇祐) |
처부 | 정동현(鄭東鉉) |
외조부 | 김협(金浹) |
[상세내용]
이재학(李在學)
1745년(영조 21)∼1801년(순조 1).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성중(聖中), 호는 지포(芝浦).
예조판서 이숭우(李崇祐)의 아들이며, 외조부는 김협(金浹), 장인은 정동현(鄭東鉉)이다.
1770년(영조 46)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정자를 거쳐 수찬과 교리가 되었다.
1776년 시독관(侍讀官)으로 있으면서 주강(晝講)하는 자리에서 명분을 바르게 하고 기강을 확립하여 억강부약하는 정치풍토를 수립하자고 상소하였으며, 그 이듬해의 대강(對講)때에는 관직은 그 구실이 매우 중요하므로 국가가 이를 신중하게 다루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납속(納粟)에 의해서도 보직하고 있는 형편이니 이는 크게 잘못된 처사로서, 국가에 공이 있으면 상을 줄지언정 관직을 부여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역설하여 왕의 승인을 받았다.
1780년(정조 4) 대사간에 취임하여서는 군신이 모두 실질을 숭상할 것과, 정치에 있어서 특히 기강을 세워줄 것을 다시 거듭 강조하였다.
그뒤 여러 조(曹)의 참의와 참판을 지내고 전라도관찰사가 되었으며, 1789년 감진사(監賑使)로서 교제곡(交濟穀)의 3분의 2를 유치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어 국가와 백성을 모두 이롭게 하였다.
1793년 동지 겸 사은부사(冬至兼謝恩副使)로 청나라에 가서 활약하였으며, 1795년 형조판서로 승진하여서는 의옥사건을 잘 처리하였고, 다시 척신인 김구주(金龜柱)의 역모를 탄핵하여 나주로 유배시켰다.
그뒤 순조가 어려서 즉위하고 정순대비(貞純大妃)가 수렴청정을 하자, 김구주의 일당인 채지영(蔡趾永)이 공격을 가하는 한편, 정조 사후에 산릉도감의 당상으로 있으면서 산역공사를 지연시켰다는 벽파(僻派)의 탄핵도 같이 받게 되어 가산(嘉山)으로 귀양갔다.
이듬해 온성으로 이배되었다가 1805년(순조 5) 풀려나 귀가하였으나 곧 죽었다.
한편으로는 한학친시(漢學親試)에서 1등을 차지하여 상을 받을 정도로 문장에 뛰어났고 글씨도 잘 썼다.
예조판서 이숭우(李崇祐)의 아들이며, 외조부는 김협(金浹), 장인은 정동현(鄭東鉉)이다.
1770년(영조 46)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정자를 거쳐 수찬과 교리가 되었다.
1776년 시독관(侍讀官)으로 있으면서 주강(晝講)하는 자리에서 명분을 바르게 하고 기강을 확립하여 억강부약하는 정치풍토를 수립하자고 상소하였으며, 그 이듬해의 대강(對講)때에는 관직은 그 구실이 매우 중요하므로 국가가 이를 신중하게 다루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납속(納粟)에 의해서도 보직하고 있는 형편이니 이는 크게 잘못된 처사로서, 국가에 공이 있으면 상을 줄지언정 관직을 부여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역설하여 왕의 승인을 받았다.
1780년(정조 4) 대사간에 취임하여서는 군신이 모두 실질을 숭상할 것과, 정치에 있어서 특히 기강을 세워줄 것을 다시 거듭 강조하였다.
그뒤 여러 조(曹)의 참의와 참판을 지내고 전라도관찰사가 되었으며, 1789년 감진사(監賑使)로서 교제곡(交濟穀)의 3분의 2를 유치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어 국가와 백성을 모두 이롭게 하였다.
1793년 동지 겸 사은부사(冬至兼謝恩副使)로 청나라에 가서 활약하였으며, 1795년 형조판서로 승진하여서는 의옥사건을 잘 처리하였고, 다시 척신인 김구주(金龜柱)의 역모를 탄핵하여 나주로 유배시켰다.
그뒤 순조가 어려서 즉위하고 정순대비(貞純大妃)가 수렴청정을 하자, 김구주의 일당인 채지영(蔡趾永)이 공격을 가하는 한편, 정조 사후에 산릉도감의 당상으로 있으면서 산역공사를 지연시켰다는 벽파(僻派)의 탄핵도 같이 받게 되어 가산(嘉山)으로 귀양갔다.
이듬해 온성으로 이배되었다가 1805년(순조 5) 풀려나 귀가하였으나 곧 죽었다.
한편으로는 한학친시(漢學親試)에서 1등을 차지하여 상을 받을 정도로 문장에 뛰어났고 글씨도 잘 썼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正祖實錄
純祖實錄
國朝榜目
正祖實錄
純祖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김호종(金昊鍾)
명 : "재학(在學)"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