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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유(權裕)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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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성수(聖垂)
호(號)국포(菊圃)
생년1730(영조 6)
졸년1804(순조 4)
시대조선후기
본관안동(安東)
활동분야문신 > 문신
권탐(權撢)

[상세내용]

권유(權裕)
1730년(영조 6)∼1804년(순조 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성수(聖垂), 호는 국포(菊圃).

부친은 권탐(權撢)이다.

1765년경부터 관직생활을 시작하여 1769년(영조 45)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좋은 가문출신은 아니나 문장력이 있고 기개가 강하여 주로 사헌부사간원의 직책들을 거치면서 신임의리(辛壬義理)의 반대자들을 극렬하게 공격하였다.

1790년(정조 14) 좌의정 채제공(蔡濟恭)을 공격하다가 정조의 노여움을 사서 창원에 유배되었고, 1795년에는 서학을 준열히 공격하여 이가환(李家煥)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정치적으로 유언호(兪彦鎬)심환지(沈煥之)의 당여에 속하여 정조 말년에는 이조참판공조판서좌참찬을 거친 다음 순조 즉위 후 지실록사(知實錄事)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1801년(순조 1)에 신유사옥이 시작되면서 대사헌으로 발탁되어 이른바 벽파(僻派)의 언론을 선도하여 윤행임(尹行恁)정민시(鄭民始)이재학(李在學)서유린(徐有隣) 등을 맹렬히 비판하였다.

김조순(金祖淳)의 딸 순원왕후(純元王后)순조와의 국혼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삼간택(三揀擇)을 방해하였다 하여 순원왕후의 가례가 끝난 뒤, 1804년 6월 가족, 제자들과 함께 추국(推鞠)을 당하여 마침내 김관주(金觀柱)정일환(鄭日煥)의 사주를 받은 대역부도죄로 지목, 2차의 혹심한 형을 받아 정법(定法)전에 죽었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純祖實錄
恩坡散稿

[집필자]

박광용(朴光用)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