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영(李泰永)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D0DCC601B1744X0 |
자(字) | 사앙(士仰) |
생년 | 1744(영조 20)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한산(韓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상세내용]
이태영(李泰永)
1744년(영조 20)∼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사앙(士仰)이다. 본관은 한산(韓山)이다.
증조부는 승지 이집(李潗)이고, 조부는 이병건(李秉健)이다. 부친 이산중(李山重)과 모친 조겸빈(趙謙彬)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참판 이해중(李海重)의 조카이다.
1772년(영조 48)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778년(정조 2)부터 부교리‧교리‧지평 등을 지냈다. 1783년(정조 7) 부교리로 재직 중에 올린 상소가 부적격하여 파직을 당하였으나 다시 서용되어 부수찬에 임용된 후 진하사은(進賀謝恩) 겸 동지사서장관(兼冬至使書狀官)으로 청나라에 파견되었다. 1793년(정조 17) 황해도관찰사 재직 시절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였다. 1795년(정조 19) 정사(正使)의 상구(喪柩)를 홀대하였다가 관직을 박탈당하였다. 그 후 다시 등용되어 경상도관찰사‧대사간(大司諫)‧공조참판‧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증조부는 승지 이집(李潗)이고, 조부는 이병건(李秉健)이다. 부친 이산중(李山重)과 모친 조겸빈(趙謙彬)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참판 이해중(李海重)의 조카이다.
1772년(영조 48)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778년(정조 2)부터 부교리‧교리‧지평 등을 지냈다. 1783년(정조 7) 부교리로 재직 중에 올린 상소가 부적격하여 파직을 당하였으나 다시 서용되어 부수찬에 임용된 후 진하사은(進賀謝恩) 겸 동지사서장관(兼冬至使書狀官)으로 청나라에 파견되었다. 1793년(정조 17) 황해도관찰사 재직 시절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였다. 1795년(정조 19) 정사(正使)의 상구(喪柩)를 홀대하였다가 관직을 박탈당하였다. 그 후 다시 등용되어 경상도관찰사‧대사간(大司諫)‧공조참판‧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國朝榜目
國朝榜目
[집필자]
김혜영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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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