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응관(高應觀)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CE0C751AD00B1743X0 |
자(字) | 원실(元實) |
호(號) | 성암(誠菴) |
생년 | 1743(영조 19) |
졸년 | 1812(순조 12)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장흥(長興)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고가현(高可賢) |
모 | 영광김씨(靈光金氏) |
외조부 | 김정화(金鼎和) |
저서 | 『성암일고』 |
[상세내용]
고응관(高應觀)
1743년(영조 19)∼1812년(순조 12).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원실(元實), 호는 성암(誠菴).
동중추 고가현(高可賢)의 아들이며, 모친은 영광김씨(靈光金氏)로 김정화(金鼎和)의 딸이다.
1783년(정조 7) 41세 때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1789년 예조좌랑에 임명되었다.
그뒤 홍양호(洪良浩)의 추천으로 사헌부장령에 특진되었으나 대간에서 이를 문제삼자 사직하였다.
1798년 사간원정언으로 다시 관직에 나가 용양위부사직, 사헌부지평‧장령 등을 역임하였다.
만년에는 고향에 돌아와 후학지도에 힘썼다.
저서로는 『성암일고』가 있다.
동중추 고가현(高可賢)의 아들이며, 모친은 영광김씨(靈光金氏)로 김정화(金鼎和)의 딸이다.
1783년(정조 7) 41세 때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1789년 예조좌랑에 임명되었다.
그뒤 홍양호(洪良浩)의 추천으로 사헌부장령에 특진되었으나 대간에서 이를 문제삼자 사직하였다.
1798년 사간원정언으로 다시 관직에 나가 용양위부사직, 사헌부지평‧장령 등을 역임하였다.
만년에는 고향에 돌아와 후학지도에 힘썼다.
저서로는 『성암일고』가 있다.
[참고문헌]
誠菴逸稿
正祖實錄
國朝榜目
正祖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김성환(金聖桓)
대표명 | 고응관(高應觀) |
성명 | 고응관(高應觀) |
성명 : "고응관(高應觀)"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