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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로(宋文輅)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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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군질(君質)
생년1742(영조 18)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여산(礪山)
활동분야문신
송집중(宋集中)

[상세내용]

송문로(宋文輅)
1742년(영조 18)~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군질(君質)이다. 본관은 여산(礪山)이고, 거주지는 한양(漢陽: 현 서울)이다.

증조부는 송세진(宋世晉)이고, 조부는 송위(宋煒)이다. 부친 통덕랑(通德郞) 송집중(宋集中)과 모친 민백남(閔百男)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신광소(申光紹)의 딸이다.

1773년(영조 49) 증광시에서 진사 3등 66위로 합격하였고, 같은 해 정시에서 병과 2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부교리(副敎理)‧헌납(獻納) 등을 역임하였다.

1775년(영조 51)에 왕세손이 존현각(尊賢閣)에 나와 있을 때 드나드는 신하들이 엎드려 절을 한 일이 있었다. 부사직(副司直) 심상운(沈翔雲)의 주도 아래서 벌어진 이 일은 위로 전하가 계신데도 불구하고 왕세손에게 엎드려 절을 하는 것이 반역(反逆)에 해당된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때에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홍인한(洪麟漢)이 임금에게 조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여러 사람들이 알게 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을 표출하는 사태까지 벌어졌고, 당시 부교리로 재직중이던 송문로(宋文輅)는 심상운을 의금부로 잡아들여 국문할 것과 홍인한에게 벌을 줄 것을 임금에게 청하여, 이후 심상운은 국문을 받았고 홍인한은 관직을 삭탈당하고 문외송출(門外送黜)되었다. 1801년(순조 1)에 1785년(정조 9)과 1786년(정조 10)에 조정을 어지럽힌 홍낙임(洪樂任)과 같은 무리로서 홍낙임과는 친사돈까지 된 후 서울의 남문(南門) 근처로 주거지를 옮겼고, 시도 때도 없이 성문(城門)을 드나들면서 때 늦게 발행된 조보(朝報)와 다른 사람들이 소장하고 있는 정서를 해치는 책들을 빌려 보는 그 종적이 비밀스럽고 괴이하기 때문에 탄핵해야 한다는 정언(正言) 신광식(申光軾)의 상소로 인해 전라남도 흥양현(興陽縣) 녹도(鹿島)에 정배(定配)되었다. 1803년(순조 3)에 정배에서는 풀려났고, 고향마을로 쫓겨났다가 1805년(순조 5)에 방면되었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
國朝文科榜目
英祖實錄
純祖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