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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환(李家煥)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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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정조(廷藻)
호(號)정헌(貞軒)
생년1742(영조 18)
졸년1801(순조 1)
시대조선후기
본관여주(驪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용휴(李用休)
조부이익(李瀷)
저서『금대유고』

[상세내용]

이가환(李家煥)
1742년(영조 18)∼1801년(순조 1).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정조(廷藻), 호는 금대(錦帶)정헌(貞軒). 이익(李瀷)의 종손으로 이용휴(李用休)의 아들이며, 천주교인 이승훈(李承薰)의 외숙이다.

학문적 교우로는 정약용(丁若鏞)이벽(李檗)권철신(權哲身) 등 초기 천주교 신자가 많았다. 1771년(영조 47)에 진사가 되고, 1777년(정조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1780년에 비인현감이 되었다.

1784년에 생질인 이승훈북경에서 돌아오고, 동료학자들이 서학에 관심을 가졌을 때 그는 천주교에 대한 학문상의 관심과 우려를 가지고 이벽과 논쟁을 벌이다가 도리어 설득되어 천주교인이 되었다. 이벽으로부터 서학입문서와 『성년광익(聖年廣益)』 등을 빌려 탐독하고, 제자들에게도 전교하는 열렬한 신자가 되었다.

그러나 1791년 신해박해 때에는 교리연구를 중단하고, 광주부윤(廣州府尹)으로서 천주교를 탄압하였고, 그뒤 대사성개성유수형조판서를 지냈고, 1795년 주문모(周文謨) 신부입국사건에 연루, 충주목사로 좌천되었는데, 그곳에서도 천주교인을 탄압하다가 파직되었다.

그뒤 다시 천주교를 연구하여 1801년(순조 1) 이승훈권철신 등과 함께 옥사로 순교하였다. 정조로부터 ‘정학사(貞學士)’라 호칭될 만큼 대학자였으며, 특히 천문학과 수학에 정통하여 그 자신이 “내가 죽으면 이 나라에 수학의 맥이 끊어지겠다.”라고 할 만큼 수학의 대가였다.

저서로는 『금대유고』가 있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國朝榜目
黃嗣永帛書
推案及鞫案
西學의 受容과 그 意識構造―李檗의 聖敎要旨를 중심으로―(金玉姬, 韓國史論, 1973)
貞軒李家煥의 詩文拾遺―朝鮮카톨릭史의 課題―(洪以燮, 斗溪李丙燾博士華甲紀念論叢, 1956)
Histoire de l’eglise de Coree(Dallet, Ch., Tome Ⅰ, 1874)

[집필자]

김옥희(金玉姬)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