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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사헌(嚴思憲)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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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741(영조 17)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영월(寧越)
활동분야문신
엄구(嚴球)

[상세내용]

엄사헌(嚴思憲)
1741년(영조 17)~미상.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영월(寧越)이다.

증조부는 숙종 대 장희빈(張禧嬪)을 논죄하였으며 예조참판(禮曹參判)‧의정부참찬(議政府參贊) 등을 역임한 엄집(嚴緝)이고, 조부는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헌납(獻納)‧승지(承旨) 등을 역임한 엄경하(嚴慶遐)이며, 부친은 엄구(嚴球)이다.

1771년(영조 47) 정시 문과에 병과 16위로 급제하였다.

1777년(정조 1)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으로, 1778년(정조 2)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으로 임명된 이후 대간직에 주로 임명되었다. 1782년(정조 6) 정조에게 올린 상소가 흉소라는 이유로 이택징(李澤徵)‧이유백(李有白)을 귀양보내고 그들의 가솔들을 노비로 삼고 가산을 몰수할 것을 주장하였다. 같은 해 홍문록(弘文錄)에 이름이 올랐다. 1785년(정조 9) 지제교(知製敎)로 선발되었다. 다음 해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의 오빠인 고(故) 김귀주(金龜柱)를 도류안(徒流案)에서 지우라고 한 명을 정지할 것을 청하였다. 1786년(정조 10)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홍국영(洪國榮) 등이 정조의 조카 상계군(常溪君) 이담(李湛)을 왕의 후계자로 추대하려 한 일이 발각되어 홍국영이 실각하고 이담이 음독자살(飮毒自殺) 하였을 때, 이들을 강하게 처벌할 것을 주장하였다. 1787년(정조 11)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에 임명되었다.

[참고문헌]

日省錄
正祖實錄

[집필자]

손용석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