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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풍지(沈豊之)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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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사상(士常)
호(號)기기재(頎頎齋)
시호(諡號)정정(貞定)
생년1738(영조 14)
졸년1793(정조 17)
시대조선후기
본관청송(靑松)
활동분야문신 > 문신
심구(沈銶)
출신지공주

[상세내용]

심풍지(沈豊之)
1738년(영조 14)∼1793년(정조 17).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사상(士常), 호는 기기재(頎頎齋). 공주 출신. 부친은 영천군수 심구(沈銶)이다.

1771년(영조 47)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로 기용되었으며, 주서정언병조정랑부수찬 겸 시강원문학 등을 역임하였다.

1776년(정조 즉위) 수찬교리가 되었고 이듬해에 감시어사(監市御史)로서 관북 지방의 재해상태를 감찰하여 대책을 마련하게 하였다. 다시 수찬이조좌랑의정부검상지평이조정랑 등을 거쳐 1780년 이조참의, 1782년 대사간으로 활동하였다.

그뒤 대사성이조참판대사간부제학 등을 역임하면서 삼사 언론의 개방을 상소하고 도승지를 거쳐 홍충도(洪忠道: 忠淸道의 당시 명칭)관찰사로 나갔다가 도내의 소요사건으로 1785년 파직당하였다.

다시 이조참판대사성대사헌도승지 등을 거쳐 예조참판이 되었으나 문효세자(文孝世子)의 조제(弔祭)를 주관하던 중 규례를 그르쳐 파직되었다.

1787년 가례도감제조도승지를 거쳐 1788년 예조판서가 되었을 때, 서원남설의 폐단을 지적하다 유배된 조덕린(趙德麟)황익재(黃翼再) 등을 용서하는 데 반대하다 뜻이 관철되지 않자 사직하였다.

그뒤 병을 얻어 고생하던 중 왕의 특명으로 예조판서도총관판율 등에 임명되었으나 노론 벽파의 입장을 지켜, 남인을 등용하는 조정에 출사하지 않았다. 시호는 정정(貞定)이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正祖實錄
國朝榜目
淸選考
楓皐集(金祖淳)

[집필자]

박정자(朴定子)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