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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순(朴載淳)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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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공후(公厚)
생년1737(영조 13)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고령(高靈)
활동분야문신
박경진(朴敬鎭)

[상세내용]

박재순(朴載淳)
1737년(영조 13)~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공후(公厚)이다. 본관은 고령(高靈)이고, 거주지는 충청북도 음성(陰城)이다.

박은(朴誾)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박번(朴蕃)이고, 조부는 박원서(朴元瑞)이며, 부친은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은률현감(行殷栗縣監) 박경진(朴敬鎭)이다. 외조부는 이시선(李蓍先)이고, 동생으로 박민순(朴民淳)이 있다.

1774년(영조 50) 증광시 진사 2등 20위로 합격하였고, 1783년(정조 7) 증광시 문과에 병과 11위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강진현감(康津縣監)‧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함창현감(咸昌縣監)‧순천군수(順川郡守)‧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교리(校理)‧응교(應敎)‧승정원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안악군수(安岳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1791년(정조 15) 지평으로 재임할 때 과거시험에 격식에 안 맞는 글이 점차 늘어나는 이유는 시권을 빨리 거둬들이도록 하기 때문이므로, 시권을 천천히 거둬들여서 실력 있는 인재를 골라 써야 함을 상소하였다. 1793년(정조 17) 김이익(金履翼)‧이조원(李祖源)‧맹지대(孟至大) 등과 함께 유배를 보내졌다가 풀려났다. 1795년(정조 19) 함창현감 시절 아전 오계권(吳啓權)이 과거에 횡령했다는 사실을 조사하던 중에 오계권이 자살을 하였다. 그러자 오계권의 형 오중권(吳重權)과 오재권(吳再權)은 조카 오상관(吳相寬) 등을 데리고 관아에 들어와 군사들을 마구 죽이다가 오중권은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법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들에게 엄벌을 내렸다. 1797년(정조 21) 수찬 김이교(金履喬)와 함께 임시철(林蓍喆)을 두둔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체직(遞職)되었다. 슬하에 4남 박화섭(朴和燮)‧박화필(朴和弼)‧박화혁(朴和赫)‧박화철(朴和喆)을 두었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
國朝文科榜目
正祖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