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환유(鄭煥猷)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15D658C720B1735X0 |
자(字) | 문중(文仲) |
생년 | 1735(영조 11)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초계(草溪)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상세내용]
정환유(鄭煥猷)
1735년(영조 11)∼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문중(文仲)이다.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조부는 정도흥(鄭道興)이고, 부친 정여직(鄭汝稷)과 모친 여광억(呂光億)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757년(영조 33)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정언‧지평‧장령‧헌납‧승지‧영광군수 등을 지냈다. 1774년(영조 50) 외직으로 영광군수로 나갔을 때 백성에 대한 진휼에 힘써 호랑이 가죽이 하사되었다. 1776년(영조 52) 진휼 상황을 과장되게 보고했다는 사실이 지평 이제만(李濟萬)의 상소로 밝혀져 관직을 박탈당하고 유배되었다. 이후 서용되어 1795년(정조 19) 행부사직을 지냈으며 품계는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올랐다.
조부는 정도흥(鄭道興)이고, 부친 정여직(鄭汝稷)과 모친 여광억(呂光億)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757년(영조 33)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정언‧지평‧장령‧헌납‧승지‧영광군수 등을 지냈다. 1774년(영조 50) 외직으로 영광군수로 나갔을 때 백성에 대한 진휼에 힘써 호랑이 가죽이 하사되었다. 1776년(영조 52) 진휼 상황을 과장되게 보고했다는 사실이 지평 이제만(李濟萬)의 상소로 밝혀져 관직을 박탈당하고 유배되었다. 이후 서용되어 1795년(정조 19) 행부사직을 지냈으며 품계는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올랐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正祖實錄
國朝榜目
萬家譜
靑邱氏譜
正祖實錄
國朝榜目
萬家譜
靑邱氏譜
[집필자]
김혜영
수정일 | 수정내역 |
---|---|
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