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훈(李命勳)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BA85D6C8B1734X0 |
자(字) | 성집(聖集) |
생년 | 1734(영조 10)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상세내용]
이명훈(李命勳)
1734년(영조 10)∼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성집(聖集)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증조부는 이시황(李時煌)이고, 조부는 이동도(李東道)이다. 부친 이상문(李尙文)과 모친 김무(金堥)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765년(영조 41)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국왕이 숭정전에서 삼일제(三日製)를 행하였을 때 수석을 차지하여 직부전시(直赴殿試)의 명이 내려졌다. 같은 해에 정언‧지평을 역임하였으나 사간원의 계달을 빠뜨렸다가 유배 갈 처지에 놓였었으나 곧 사면되어 풀려났다. 다시 지평으로 기용되었으나, 1768년(영조 44) 영조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가 함경남도 갑산부(甲山府)에 귀양 보내졌으나 다시 서용되어 1779년(정조 3) 헌납‧사간을 지냈다.
증조부는 이시황(李時煌)이고, 조부는 이동도(李東道)이다. 부친 이상문(李尙文)과 모친 김무(金堥)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765년(영조 41)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국왕이 숭정전에서 삼일제(三日製)를 행하였을 때 수석을 차지하여 직부전시(直赴殿試)의 명이 내려졌다. 같은 해에 정언‧지평을 역임하였으나 사간원의 계달을 빠뜨렸다가 유배 갈 처지에 놓였었으나 곧 사면되어 풀려났다. 다시 지평으로 기용되었으나, 1768년(영조 44) 영조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가 함경남도 갑산부(甲山府)에 귀양 보내졌으나 다시 서용되어 1779년(정조 3) 헌납‧사간을 지냈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國朝榜目
國朝榜目
[집필자]
김혜영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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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