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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염조(沈念祖)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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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백수(伯修)
호(號)함재(涵齋)
생년1734(영조 10)
졸년1783(정조 7)
시대조선후기
본관청송(靑松)
활동분야문신 > 문신
심공헌(沈公獻)
저서『서장문견록(書狀文見錄)』

[상세내용]

심염조(沈念祖)
1734년(영조 10)∼1783년(정조 7).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백수(伯修), 호는 함재(涵齋). 심공헌(沈公獻)의 아들이다.

1776년(영조 52)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77년(정조 1) 관서암행어사, 이듬해에는 강화어사로 파견되었다. 이해에 사은 겸 진주사(謝恩兼陳奏使) 채제공(蔡濟恭)서장관(書狀官)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온 뒤 『서장문견록(書狀文見錄)』을 지어 정조에게 바쳤다.

왕이 청나라 문물에 대하여 묻자, “건륭제(乾隆帝)는 영주(英主)이나 연로하고 정령(政令)이 가혹하여 백성이 불안에 떨고 있으며, 중화(中華)의 문물이 땅에 떨어져 강남 한족(漢族)도 오랑캐 풍습을 따르고 있다.”고 하였다.

청나라에서 돌아와 홍문관교리에 임명되었으며, 1780년 함종부사규장각직제학이조참의를 거쳐, 1782년 홍문관부제학으로 감인당상(監印堂上)에 임명되었으나, 대사간의 탄핵을 받아 홍주(洪州: 현재의 충청남도 홍천)로 유배되었다가 곧 풀려났다.

1783년 황해도관찰사로 있다가 임지에서 죽었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國朝榜目
號譜

[집필자]

이재호(李載琥)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