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추(申若樞)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2E0C57DCD94B1733X0 |
자(字) | 사흠(士欽) |
생년 | 1733(영조 9)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고령(高靈) |
활동분야 | 문신 |
부 | 신순(申淳) |
생부 | 신일권(申一權) |
[상세내용]
신약추(申若樞)
1733년(영조 9)∼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사흠(士欽)이다.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교관(敎官) 신직(申溭)의 후손이고, 고조는 신익제(申益濟)이며, 증조부는 신찬(申灒)이고, 조부는 신성하(申聖河)이다. 부친은 신순(申淳)이고, 생부는 신일권(申一權)이다.
1787년(정조 11) 정시 병과에 급제하였다.
1798년(정조 22)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으로 재직 중 명산(名山)에 찾아가 봉선(封禪)의 의례를 시행해야 한다고 상소를 올렸는데, 그 내용이 시국의 정세에 어긋나며, 망언이 가득하다는 책망을 받았다. 또한 이 일을 계기로 벽동군(碧潼郡: 현 평안북도 벽동군)으로 유배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사학(四學) 유생(儒生)인 유춘주(兪春柱) 등은 상소를 올려서, 신약추(申若樞)가 대의명분을 어지럽혔으며 도의와 인륜을 위배하였으므로, 유배형에 끝나서는 안 되니, 형벌을 직접 적용하기를 청하였다. 태학(太學)의 유생들 또한 이에 동조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슬하에 아들로 신정모(申鼎模)를 두었다.
교관(敎官) 신직(申溭)의 후손이고, 고조는 신익제(申益濟)이며, 증조부는 신찬(申灒)이고, 조부는 신성하(申聖河)이다. 부친은 신순(申淳)이고, 생부는 신일권(申一權)이다.
1787년(정조 11) 정시 병과에 급제하였다.
1798년(정조 22)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으로 재직 중 명산(名山)에 찾아가 봉선(封禪)의 의례를 시행해야 한다고 상소를 올렸는데, 그 내용이 시국의 정세에 어긋나며, 망언이 가득하다는 책망을 받았다. 또한 이 일을 계기로 벽동군(碧潼郡: 현 평안북도 벽동군)으로 유배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사학(四學) 유생(儒生)인 유춘주(兪春柱) 등은 상소를 올려서, 신약추(申若樞)가 대의명분을 어지럽혔으며 도의와 인륜을 위배하였으므로, 유배형에 끝나서는 안 되니, 형벌을 직접 적용하기를 청하였다. 태학(太學)의 유생들 또한 이에 동조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슬하에 아들로 신정모(申鼎模)를 두었다.
[참고문헌]
국조방목(國朝榜目)
조선왕조실록(정조)
조선왕조실록(정조)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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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