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달수(洪達洙)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64DB2ECC218B1732X0 |
자(字) | 도원(道源) |
생년 | 1732(영조 8)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남양(南陽[唐]) |
활동분야 | 의관 |
부 | 홍택귀(洪澤龜) |
[상세내용]
홍달수(洪達洙)
1732년(영조 8)~미상. 조선 후기 의관. 자는 도원(道源)이다. 본관은 남양(南陽[唐])이다.
증조부는 홍구주(洪九疇)이고, 조부는 홍석규(洪錫圭)이며, 부친은 홍택구(洪澤龜)이다. 모친은 최시현(崔時顯)의 딸이고, 부인은 방처조(方處祚)의 딸이다.
1756년(영조 32) 식년시에 의과 장원으로 입격하였고, 이후 의학훈도(醫學訓導)와 내의원정(內醫院正) 등을 역임하였다.
1777년(정조 1) 6월에 궁궐에서 궁녀 백 명을 초택(抄擇)한다는 유언비어를 지어냈다는 혐의로 법사(法司)로 이송되었고, 이후 함경도 삼수부(三水府)에 형배(刑配)되었다. 1786년(정조 10) 2월에는 우덕하(禹德夏)‧이태수(李泰守)‧유한경(劉漢敬) 등이 역모를 꾀한다는 흉서(凶書)와 관련되었다는 혐의를 받아서 섬으로 귀양 보내졌다.
증조부는 홍구주(洪九疇)이고, 조부는 홍석규(洪錫圭)이며, 부친은 홍택구(洪澤龜)이다. 모친은 최시현(崔時顯)의 딸이고, 부인은 방처조(方處祚)의 딸이다.
1756년(영조 32) 식년시에 의과 장원으로 입격하였고, 이후 의학훈도(醫學訓導)와 내의원정(內醫院正) 등을 역임하였다.
1777년(정조 1) 6월에 궁궐에서 궁녀 백 명을 초택(抄擇)한다는 유언비어를 지어냈다는 혐의로 법사(法司)로 이송되었고, 이후 함경도 삼수부(三水府)에 형배(刑配)되었다. 1786년(정조 10) 2월에는 우덕하(禹德夏)‧이태수(李泰守)‧유한경(劉漢敬) 등이 역모를 꾀한다는 흉서(凶書)와 관련되었다는 혐의를 받아서 섬으로 귀양 보내졌다.
[참고문헌]
朝鮮時代雜科合格者總覽
正祖實錄
正祖實錄
[집필자]
노인환
수정일 | 수정내역 |
---|---|
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