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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승(申大升)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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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일여(日如)
생년1731(영조 7)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평산(平山)
활동분야문신
신유(申曘)

[상세내용]

신대승(申大升)
1731년(영조 7)~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일여(日如)이다.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출신지는 한양(漢陽)이다.

증조부는 신탁(申琢)이고, 조부는 신적하(申迪夏)이며, 부친은 신유(申曘)이다. 외조부는 이득보(李得輔)이고, 처부는 이영록(李永祿)이다.

1762년(영조 38년) 식년시에서 진사 3등 69위로 합격하였고, 1770년(영조 46) 정시 문과에서 장원 급제하였다. 1771년(영조 47) 5월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이 되었고, 8월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이 되었으며, 1776년(영조 52) 1월 승정원승지(承政院承旨)가 되었다.

1780년(정조 4) 동지사은사(冬至謝恩使)의 사행에 부사(副使)로 참여하였다. 1783년(정조 7) 3월에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이 되었고, 같은 해 9월 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이 되었으며, 11월에는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가 되었다.

1785년(정조 9) 2월에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이 되었고, 5월에 성균관대사성이 되었다. 이후 성균관대사성과 사헌부대사헌에 교대로 임명되었다.

1789년(정조 13) 10월 강화부유수(江華府留守)가 되었으나, 1790년(정조 14) 11월 선전관(宣傳官)에게 밀부(密符)를 빼앗긴 채 서울로 압송되었다. 12월에는 사헌부대사헌이 되었다.

1792년(정조 16) 홍문관 부수찬(弘文館副修撰) 박규순(朴奎淳)이 ‘영남(嶺南) 유생의 상소를 보고 내린 왕의 비지(批旨)를 모독한 안총(安寵)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죄를 물어 당시 안동부사(安東府使) 신대승의 벼슬을 빼앗고 사대문 밖으로 쫓아내야 한다’며 올린 상소로 인해 벼슬을 빼앗겼다. 1793년(정조 17) 사헌부대사헌이 되었고, 1794년(정조 18) 성균관대사성이 되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박경이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