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낙인(洪樂仁)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64DB099C778B1729X0 |
자(字) | 대유(大囿) |
호(號) | 안와(安窩) |
생년 | 1729(영조 5) |
졸년 | 1777(정조 1)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풍산(豊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홍봉한(洪鳳漢) |
조부 | 홍현보(洪鉉輔) |
외조부 | 이집(李潗) |
저서 | 『안와유고』 |
[관련정보]
[상세내용]
홍낙인(洪樂仁)
1729년(영조 5)∼1777년(정조 1).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대유(大囿), 호는 안와(安窩). 예조판서 홍현보(洪鉉輔)의 손자로,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의 아들이며, 모친은 이집(李潗)의 딸이다.
1761년(영조 37)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교리가 되었다. 1763년 통신사의 종사관으로 일본에 갈 예정이었으나, 고모부인 조엄으로 통신정사가 뀌자 친혐이 있다는 이유로 홍낙인 대신 홍상익이 종사관이 되었다.
그뒤 보덕‧예조참의‧좌부승지‧대사성‧전라도관찰사‧대사헌을 역임, 1773년 도승지, 이어 지돈녕부사를 거쳐 1775년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저서로는 『안와유고』가 있다.
1761년(영조 37)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교리가 되었다. 1763년 통신사의 종사관으로 일본에 갈 예정이었으나, 고모부인 조엄으로 통신정사가 뀌자 친혐이 있다는 이유로 홍낙인 대신 홍상익이 종사관이 되었다.
그뒤 보덕‧예조참의‧좌부승지‧대사성‧전라도관찰사‧대사헌을 역임, 1773년 도승지, 이어 지돈녕부사를 거쳐 1775년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저서로는 『안와유고』가 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正祖實錄
日省錄
國朝榜目
正祖實錄
日省錄
國朝榜目
[집필자]
유승주(柳承宙)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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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