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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순(金應淳)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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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회원(會元)
생년1728(영조 4)
졸년1774(영조 50)
시대조선후기
본관안동(安東[新])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이건(金履健)

[상세내용]

김응순(金應淳)
1728년(영조 4)∼1774년(영조 50).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新]). 자는 회원(會元). 김상용(金尙容)의 8세손이며, 부친은 김이건(金履健)이다.

1753년(영조 29)에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756년에 지평이 되었으며 정언을 거쳐 1759년에 경기어사(京畿御史)가 되어 환곡(還穀)을 돈으로 거둬들인 광주부윤 원경(元景), 죄수를 사역시킨 통진현감 윤병연(尹秉淵), 치적이 나쁜 죽산부사 이석유(李碩儒)의 파직을 건의하였다.

1762년에는 영남호남이 크게 가물어 호남지방에 파견되었다.

이듬해 응교가 되었고, 이어서 광주부윤승지를 거쳐 1765년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 부제학이조참의를 역임하고 1769년 대사헌이 되었으며, 도승지를 지냈다.

1770년에 사직(司直)으로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그뒤 이조참판한성부좌윤을 거쳐 호조참판한성부우윤을 역임하였고, 후에 예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손승철(孫承喆)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