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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경(徐有慶)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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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선여(善餘)
생년1727(영조 3)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대구(大丘)
활동분야문신
서인수(徐仁修)

[상세내용]

서유경(徐有慶)
1727년(영조 3)~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선여(善餘)이다. 본관은 대구(大丘)이다.

증조부는 영조의 국구(國舅)이자 달성부원군(達城府院君)에 봉해진 서종제(徐宗悌)이고, 조부는 서명백(徐命伯)이며, 부친은 서인수(徐仁修)이다.

1750년(영조 26)에 식년시 진사 3등 6위로 입격하였고, 1773년(영조 49) 증광시에 을과 2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1775년(영조 51)에는 이경륜(李敬倫)과 함께 승지(承旨)에 임명되었고, 다음 해인 1776년(영조 52)에 왕세손과 과장(科場) 철폐문제를 논의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영조가 서거하자 영조의 목욕례(沐浴禮)에 참석하기도 하고 명정(銘旌) 문제를 논의하기도 하였다. 정조 즉위년에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로 발탁되었으나, 1777년(정조 1)에 형제가 함께 개성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이유로 사직하였다. 1779년(정조 3)에는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으로 임명되어 송시열(宋時烈)의 현손으로 당시 좨주(祭酒)였던 송덕상(宋德相)을 쓰도록 권유하기도 하였고, 홍국영(洪國榮)의 큰아버지로 좌의정(左議政)에 이르렀던 홍낙순(洪樂純)을 처벌할 것을 간언하기도 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공조판서(工曹判書)‧예조판서(禮曹判書)‧의정부우참찬(議政府右參贊)‧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 등을 역임하였다.

1781년(정조 5)에는 동지정사(冬至正使)로서 신대승과 함께 중국에 다녀와 청의 사정을 아뢰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正祖實錄

[집필자]

손용석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