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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붕(鄭宇朋)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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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여거(汝巨)
생년1725(영조 1)
졸년1793(정조 17)
시대조선후기
본관경주(慶州)
활동분야무신
정석장(鄭碩章)

[상세내용]

정우붕(鄭宇朋)
1725년(영조 1) 2월 18일~1793년(정조 17) 7월 3일(주1)
졸년
『경주정씨세보(慶州鄭氏世譜)』를 참고하여 졸년을 추가.
. 조선 후기 무신. 자는 여거(汝巨)(주2)
『경주정씨세보(慶州鄭氏世譜)』에는 자가 "여거(汝擧)"로 나옴.
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출신지는 충원(忠原)이다.

증조부는 정하경(鄭夏慶)이고, 조부는 정유전(鄭惟全)이며, 부친은 통덕랑(通德郞) 정석장(鄭碩章)이다. 외조부는 원주김씨(原州金氏) 김몽규(金夢奎)이고, 처부는 전주이씨(全州李氏) 이광형(李匡衡)과 음성박씨(陰城朴氏) 박정두(朴廷斗)(주3)
가계
『경주정씨세보(慶州鄭氏世譜)』를 참고하여 조부, 증조부, 외조부, 처부1‧2를 추가.
이다. 형은 정우벽(鄭宇璧)이다.

1763년(영조 39) 증광시에서 병과 120위로 무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나주영장(羅州營將)‧다대포첨사(多大浦僉使)‧해미현감(海美縣監)‧명천부사(明川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1777년(정조 1) 다대포첨사(多大浦僉使)가 되었다. 1780년(정조 4) 해미현감(海美縣監)을 제수 받았다. 1781년(정조 5) 죄인들의 명단을 적는 업무를 잘 관리하지 못한 죄로 태형 40대에 처해졌었으나 벌금으로 대신하였고, 장부에는 죄의 명만 기록되고 본래 직분을 유지하였다. 1789년(정조 13) 명천 지방에 수재가 나서 2천여 명의 사람이 익사하고 5백결의 전토가 묻혔다. 당시 정우붕(鄭宇朋)은 명천부사로서 기민구휼(飢民救恤)에 힘써 그 공로로 가자(加資)되었다. 1791년(정조 15) 북관(北關)에 기근이 들었을 당시 명천부사로 자리하면서 사재를 털어 곡식을 마련하는 등 구휼에 힘썼던 공로로 1792년(정조 16)에 표리(表裏)를 하사받았고 기내방어사(畿內防禦使)에 발탁되었다.

[참고문헌]

癸未大增廣別試文武科榜目
日省錄
正祖實錄

[집필자]

구은희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5-06-16『경주정씨세보(慶州鄭氏世譜)』를 참고하여 졸년, 조부, 증조부, 외조부, 처부1‧2를 추가하였습니다.[수정자:이재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