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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욱지(沈勗之)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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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진숙(進叔)
생년1725(영조 1)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청송(靑松)
활동분야문신
심당(沈鏜)

[상세내용]

심욱지(沈勗之)
1725년(영조 1)~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진숙(進叔)이다.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증조부는 심충(沈冲)이고, 조부는 심필현(沈弼賢)이며, 부친은 심당(沈鏜)이다. 외조부는 전풍수(全豊守) 이규(李楑)이고, 처부는 윤선(尹宣)이다.

1754년(영조 30) 도과정시(道科庭試)에 병과 4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지평(持平)‧수찬(修撰)‧사서(司書)‧정언(正言)‧헌납(獻納)‧동부승지(同副承旨)‧대사간(大司諫)‧의주부윤(義州府尹) 등을 역임하였다.

1754년 신진(新進)을 뽑는 괴원권록(槐院圈錄)에 부정한 청탁으로 과거에 급제하였다가 시권(試券)을 바치고 쫓겨난 일이 있었는데, 임금의 은혜로 특별히 과시(課試)를 보게 되어 급제하였다. 1760년(영조 36) 남쪽 지방에서 치러지는 고시(考試)에 참관할 때 이름을 묻는 등 사심(私心)있는 질문을 하였다가 공도(公道)를 지키지 못한 죄로 파직되었다. 1762년(영조 38) 문학(文學)에 기본적 자질이 있는 사람을 뽑는 옥당(玉堂)의 청현직(淸顯職)에 제수되었다가 지평 곽진순(郭鎭純)으로부터 인덕이 부족하고 문예도 부족하다는 탄핵을 받았다. 같은 해에 정언 홍경안(洪景顔)이 마음가짐이 음란하고 행실 또한 거간꾼과 같다면서 사판(仕版)에서의 삭제를 청하였다. 그러나 임금이 윤허하지 않아 무사하였다. 1763년(영조 39) 사서 재임 시절 자신을 탄핵했던 정언 홍경안의 상소문을 반박하고 관료를 뽑는 과정을 시정해줄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려 임금의 윤허를 받아냈다. 1770년(영조 46) 대사간 재임 시절에 자신에 대한 나쁜 소문의 출처를 찾아내달라고 임금에게 호소하였다가 무례하다는 이유로 관직에서 삭탈당하고 사판에서 이름이 삭제되었으나, 다시 등용되어 승지에 제수되었다.

1776년(영조 52) 대사간 재임 시절, 1774년(영조 50)에 승지 심상운(沈翔雲)이 정후겸과 홍인한의 사주를 받고 세손을 온실수(溫室樹)에 비유하는 흉서를 올린 일이 있었는데 그 흉서가 임금에게까지 올라가지 못하도록 중간에서 막은 죄를 물어 파직되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