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원(朴明源)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C15BA85C6D0B1725X0 |
자(字) | 회보(晦甫) |
호(號) | 만보정(晩葆亭) |
시호(諡號) | 충희(忠僖) |
생년 | 1725(영조 1) |
졸년 | 1790(정조 14)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반남(潘南)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부 | 박사정(朴師正) |
처 | 화평옹주(和平翁主) |
[상세내용]
박명원(朴明源)
1725년(영조 1)∼1790년(정조 14).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회보(晦甫), 호는 만보정(晩葆亭). 예조참판 박사정(朴師正)의 아들이다.
1738년(영조 14) 영조의 제3녀 화평옹주(和平翁主)에게 장가들어 금성위(錦城尉)에 봉하여졌으며 영조의 깊은 사랑을 받았다.
처음 순의대부(順義大夫)를 받았으나, 뒤에 유록대부(綏祿大夫)에 승진되었다.
글씨를 잘 써서 나라에 경사나 슬픈 일이 있을 때면 금옥보책명정서관(金玉寶冊銘旌書官)이 되었는데, 모두 10여 차례에 이르렀다.
1776년(영조 52) 삼절연공 겸 사은사(三節年貢兼謝恩使), 1780년(정조 4) 진하 겸 사은사, 1784년 사은사 등 세 차례에 걸쳐 중국에 정사로 파견되었다.
몸가짐에 절도가 있었으며, 검소하였고 또한 풍류와 운치가 있었다. 시호는 충희(忠僖)이다.
1738년(영조 14) 영조의 제3녀 화평옹주(和平翁主)에게 장가들어 금성위(錦城尉)에 봉하여졌으며 영조의 깊은 사랑을 받았다.
처음 순의대부(順義大夫)를 받았으나, 뒤에 유록대부(綏祿大夫)에 승진되었다.
글씨를 잘 써서 나라에 경사나 슬픈 일이 있을 때면 금옥보책명정서관(金玉寶冊銘旌書官)이 되었는데, 모두 10여 차례에 이르렀다.
1776년(영조 52) 삼절연공 겸 사은사(三節年貢兼謝恩使), 1780년(정조 4) 진하 겸 사은사, 1784년 사은사 등 세 차례에 걸쳐 중국에 정사로 파견되었다.
몸가짐에 절도가 있었으며, 검소하였고 또한 풍류와 운치가 있었다. 시호는 충희(忠僖)이다.
[참고문헌]
耳溪集
淸選考
淸選考
[집필자]
이원균(李源鈞)
명 : "명원(明源)"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2010-02-17 | [정조실록] 1790년(정조 14년) 4월 11일조를 참고하여 시호 충희(忠僖) 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