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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도(趙進道)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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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성여(聖與)
호(號)마암(磨巖)
생년1724(경종 4)
졸년1788(정조 12)
시대조선후기
본관한양(漢陽)
활동분야학자 > 유생

[상세내용]

조진도(趙進道)
1724년(경종 4)∼1788년(정조 12). 조선 중기 유학자. 자는 성여(聖與)이고, 호는 마암(磨巖)이다. 본관은 한양(漢陽)이고, 거주지는 경상북도 영양군(英陽郡) 일월면(日月面)이다.

증조부는 조군(趙頵)이고, 조부는 동부승지(同副承旨) 조덕린(趙德隣)이다. 부친 통덕랑(通德郞) 조희당(趙喜堂)의 5남 중 4남으로 태어났다. 형 조준도(趙遵道)‧조운도(趙運道)‧조근도(趙近道)와 동생 조술도(趙述道)가 있다. 부인은 권응규(權應圭)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태백산 각화사(覺華寺)에서 종형 졸천군(拙川君)과 함께 공부할 때, 소산(小山) 이광정(李光庭)을 만나 문의(文義)를 강론할 정도로 해박한 견해를 가졌다.

1759년(영조 35) 증광 별시에 합격하고, 1759년(영조 35) 별시 병과 7위로 문과 급제하였으나, 지평(持平) 이윤욱(李允郁)이 조부 조덕린의 관직이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손자가 과거시험을 보고 대과에 급제한 것은 부당한 일이라며 급제를 취소해야 한다고 상소하였다. 이에 김상로(金尙魯)와 홍계희(洪啓禧)가 주청하여 급제를 확인해주는 합격증인 홍패(紅牌)를 거두어 갔다. 이후 산속에 은거한 채 독서와 시문에 몰두하였으며 거문고 듣기를 즐겨 거문고에 능한 손님이 찾아오는 것을 좋아하였다.

1788년(정조 12)에 조부 조덕린의 관직이 회복됨과 동시에 홍패를 돌려 받았다.

묘는 경상북도 영양에 있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집필자]

박경이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