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원(林鼎遠)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84C815C6D0B1724X0 |
자(字) | 사수(士受) |
생년 | 1724(경종 4)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나주(羅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상세내용]
임정원(林鼎遠)
1724년(경종 4)∼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사수(士受)이다.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증조부는 임치(林治)이고, 조부는 임예(林藝)이다. 부친 임성헌(林聖憲)과 모친 한시대(韓始大)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763년(영조 39) 증광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766년(영조 42) 이후 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집의(執義) 등을 역임하였다. 1771년(영조 47) 외직으로 영남 지역의 심리어사(審理御史)로 나갔다가 돌아와 억울하게 사노비(寺奴婢)와 사패노비(賜牌奴婢)가 된 자들을 풀어줄 것을 주장하다가 장령(掌令) 이만육(李萬育)의 탄핵을 받았다. 1772년(영조 48) 이후 승지‧대사간(大司諫) 등을 역임하였다.
증조부는 임치(林治)이고, 조부는 임예(林藝)이다. 부친 임성헌(林聖憲)과 모친 한시대(韓始大)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763년(영조 39) 증광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766년(영조 42) 이후 정언(正言)‧지평(持平)‧수찬(修撰)‧집의(執義) 등을 역임하였다. 1771년(영조 47) 외직으로 영남 지역의 심리어사(審理御史)로 나갔다가 돌아와 억울하게 사노비(寺奴婢)와 사패노비(賜牌奴婢)가 된 자들을 풀어줄 것을 주장하다가 장령(掌令) 이만육(李萬育)의 탄핵을 받았다. 1772년(영조 48) 이후 승지‧대사간(大司諫) 등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國朝榜目
增補文獻備考
國朝榜目
增補文獻備考
[집필자]
김혜영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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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