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회(權恢)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AD8CD68CFFFFB1723X0 |
자(字) | 복초(復初) |
생년 | 1723(경종 3)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안동(安東) |
활동분야 | 문신 |
부 | 권응(權譍) |
[상세내용]
권회(權恢)
1723년(경종 3)~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복초(復初)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부친은 권응(權譍)이다.
1759년(영조 35) 정시 문과에서 병과 5위로 급제하였다.
1769년(영조 45) 지평(持平)으로 임명되었고, 1770년(영조 46) 지평 이한일(李漢一)로부터 남의 눈치를 살펴서 간언을 올리고, 인간됨이 경박스럽다는 탄핵을 받아서 관직에서 삭직되었다. 1771년(영조 47) 사면되어 재차 지평에 임명되었다. 이후 정언(正言)‧헌납(獻納) 등을 역임하였다.
1795년(정조 19)에는 화성(華城) 축성에 있어서, 수성(守城)하는 기계의 완비 및 둔전(屯田) 설치 등의 방안을 임금에게 건의하기도 하였다.
부친은 권응(權譍)이다.
1759년(영조 35) 정시 문과에서 병과 5위로 급제하였다.
1769년(영조 45) 지평(持平)으로 임명되었고, 1770년(영조 46) 지평 이한일(李漢一)로부터 남의 눈치를 살펴서 간언을 올리고, 인간됨이 경박스럽다는 탄핵을 받아서 관직에서 삭직되었다. 1771년(영조 47) 사면되어 재차 지평에 임명되었다. 이후 정언(正言)‧헌납(獻納) 등을 역임하였다.
1795년(정조 19)에는 화성(華城) 축성에 있어서, 수성(守城)하는 기계의 완비 및 둔전(屯田) 설치 등의 방안을 임금에게 건의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英祖實錄
正祖實錄
英祖實錄
正祖實錄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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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