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이담(李潭)

[요약정보]

UCIG002+AKS-KHF_12C774B2F4FFFFB1723X0
자(字)경룡(景龍)
시호(諡號)문목(文穆)
생년1723(경종 3)
졸년1775(영조 51)
시대조선후기
본관덕수(德水)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익진(李翼鎭)
조부이당(李簹)
외조부김영행(金令行)

[상세내용]

이담(李潭)
1723년(경종 3)∼1775년(영조 5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경룡(景龍). 호는 담녕(澹寧).현감 이당(李簹)의 손자로, 이익진(李翼鎭)의 아들이며, 모친은 김영행(金令行)의 딸이다.

1747년(영조 23) 생원시에 장원으로 합격하고, 1751년 부평부사를 역임한 뒤, 1756년 봉사가 되었다. 이해 봉사로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을 거쳐 이듬해 정언이 되었다.

1759년 북평사로 나갔다가 이듬해 돌아와 교리를 역임한 뒤, 다시 면천군수로 나갔다.

그뒤 1763년 대사간에 올랐다. 이어 이듬해 승지가 되고 1766년 황해도관찰사가 되었으며, 1768년 부제학으로 중앙에 돌아와 이듬해 공조참판이 되었다.

1770년 편집청당상으로 『동국문헌비고』 편찬에 참여한 공으로 가자되었다.

그뒤 1771년 이조참판이 되고 이듬해 다시 대사간을 역임한 뒤, 1773년 이조판서, 1775년 예조판서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목(文穆)이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國朝榜目
淸選考
增補文獻備考

[집필자]

김창수(金昌洙)
대표명이담(李潭)
담(潭)
성명이담(李潭)

명 : "담(潭)"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政堂故事v4告廣州留守李哲輔因山城習操將爲亂捕廳鞫泓物故哲輔待令上御門拿入哲輔命卽行操哲輔還任行操涵時在翼鎭任所書抵其父令遂涵翼鎭乃驚遂之送書中途慰涵曰以上命之故不得不出送而有若逐之深所未安且引柳下惠有弟跖何傷乎
政堂故事v4書抵其父令遂涵翼鎭乃驚遂之送書中途慰涵曰以上命之故不得不出送而有若逐之深所未安且引柳下惠有弟跖何傷乎以滿洩獄事於其父命納口招潭對以實赦之
政堂故事v4送書中途慰涵曰以上命之故不得不出送而有若逐之深所未安且引柳下惠有弟跖何傷乎潭以滿洩獄事於其父命納口招對以實赦之
政堂故事v9慍憾由於是矣及召衡帳前辭朝受㑉密符未及移時大臣踵入白遞仍請江界之作爲武窠自上命吏判入侍下詢武弁誰可卽以李得濟仰對得齊蒙點以辭呈遞則大臣終以李達海筵稟差遣崔台 衡不合邊倅則陳達改遞不是異事但此是文官當次
政堂故事v9而疑臣者終出於情外又以臣藏頭則是必欲使臣盡吐所藴也當初江界邑之作缺也大臣以武臣李達海擧薦於吏判李潭則以文武不可易次不許其托而以前承旨崔台衡爲首擬蒙點大臣之慍憾由於是矣及召衡帳前辭朝受㑉密符未及移時大臣
國朝人物志v3蔭補楊口縣監邑有白土歲貢燔磁爲鉅弊簹白其狀遂得減半民以賴蘇子箕鎭文科判書上同二孫澍判書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0-04-06윤정현(尹定鉉) 撰 吏曹判書李公諡狀을 참고하여 호 담녕(澹寧)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