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렬(尹承烈)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24C2B9B82CB1722X0 |
자(字) | 사술(士述) |
생년 | 1722(경종 2)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해평(海平)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관련정보]
[상세내용]
윤승렬(尹承烈)
1722년(경종 2)∼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사술(士述)이다. 본관은 해평(海平)이다.
증조부는 윤언명(尹彦明)이고, 조부는 윤득의(尹得義)이다. 부친 윤정동(尹鼎東)과 모친 관찰사 김성운(金聖運)의 딸 경주김씨(慶州金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처부는 이징규(李徵奎)이다.
1761년(영조 37)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사간원정언‧홍문관부수찬 등을 지냈다.
1764년(영조 40) 부수찬 재직 시절 영조가 재계 할 때 소란을 일으켰다가 갑산부로 유배 명을 받았고, 1765년(영조 41) 영조가 진전(眞殿)에서 재계할 때 품행이 좋지 않은 일로 김포군으로 유배되었다.
1784년(정조 8) 진하(陳賀) 겸 사은사(兼謝恩使) 부사 재직 시절 북경(北京)으로 사신 갔을 때 건륭(乾隆)황제가 시행한 석전(釋奠)과 경전 강론에 참관하였다. 1788년(정조 12) 강화부유수 재직 시절 감옥 방비를 허술하게 감독하였다가 이인(李裀)이 탈출한 사건이 발생하자 관직을 박탈당하였다.
증조부는 윤언명(尹彦明)이고, 조부는 윤득의(尹得義)이다. 부친 윤정동(尹鼎東)과 모친 관찰사 김성운(金聖運)의 딸 경주김씨(慶州金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처부는 이징규(李徵奎)이다.
1761년(영조 37)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사간원정언‧홍문관부수찬 등을 지냈다.
1764년(영조 40) 부수찬 재직 시절 영조가 재계 할 때 소란을 일으켰다가 갑산부로 유배 명을 받았고, 1765년(영조 41) 영조가 진전(眞殿)에서 재계할 때 품행이 좋지 않은 일로 김포군으로 유배되었다.
1784년(정조 8) 진하(陳賀) 겸 사은사(兼謝恩使) 부사 재직 시절 북경(北京)으로 사신 갔을 때 건륭(乾隆)황제가 시행한 석전(釋奠)과 경전 강론에 참관하였다. 1788년(정조 12) 강화부유수 재직 시절 감옥 방비를 허술하게 감독하였다가 이인(李裀)이 탈출한 사건이 발생하자 관직을 박탈당하였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正祖實錄
國朝榜目
正祖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김혜영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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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