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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제(李明濟)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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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여량(汝亮)
생년1721(경종 1)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문신
이시업(李蓍業)

[상세내용]

이명제(李明濟)
1721년(경종 1)~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여량(汝亮)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증조부는 이무(李堥)이고, 조부는 이기헌(李箕獻)이다. 부친 통덕랑(通德郞) 이시업(李蓍業)과 모친 권용(權瑢)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동생은 이정제(李正濟)‧이경제(李敬濟)이다.

1754년(영조 30) 증광시에서 생원 3등 1위로 합격하였다.

1777년(정조 1) 증광시에서 병과 6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1781년(정조 5)에 지평(持平)으로 재직 중, 임금에게 상소를 올려 대역죄인 홍국영(洪國榮)의 죄상을 거듭 거론하였다. 또한,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윤광소(尹光紹)의 상소에 홍국영을 비호하는 말이 포함되어 있으니 무례를 범하였다는 내용으로 탄핵을 하였고, 유배형에 처할 것을 건의하였다. 그러나 이명제(李明濟)의 상소 내용 중에 대역죄인 김귀주(金龜柱)와 홍계능(洪啓能)을 비교하여, 김귀주를 극악무도한 죄인이라고 일컫고, 홍계능 등은 지엽에 불과하다고 기술한 구문이 있었는데, 이 일이 문제가 되어 우의정(右議政) 이휘지(李徽之)로부터 그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지탄을 받기도 하였다. 이후에도 임금에게 지속적으로 상소를 올려 홍국영의 역모와 관련된 송덕상(宋德相)‧유당(柳戇) 등의 처벌을 건의하였다. 한편, 지평 이우진(李羽晉)은 그의 상소가 무례하다는 내용으로 그를 탄핵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