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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손(元仁孫)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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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자정(子靜)
시호(諡號)문민(文敏)
생년1721(경종 1)
졸년1774(영조 50)
시대조선후기
본관원주(原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원경하(元景夏)

[상세내용]

원인손(元仁孫)
1721년(경종 1)∼1774년(영조 50).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자정(子靜). 예조판서 원경하(元景夏)의 아들이다.

30세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752년(영조 28)에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세마(洗馬)가 되었다가 1753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세자시강원설서가 되고, 정언사서 등을 역임하였다.

홍문관부응교 재임시 『천의소감(闡義昭鑑)』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어 이조참판이조판서 등을 거쳐 1772년에 우의정에 이르렀다. 그는 아버지의 대탕평(大蕩平)의 뜻을 받아 편당에 기울어지지 않아 영조의 총애를 받았다. 성격이 평직(平直)하여 전주(銓注)나 고시(考試)를 공정하게 하였으며, 세자찬선(世子贊善) 송명흠(宋明欽)이 억울하게 관직이 추삭됨을 보고 임금에게 직간하여 그를 복구시켰다.

사장(詞章)에 능하여 1765년 이조참판으로 재직시 서명응(徐命膺)과 함께 『어제독서록(御製讀書錄)』『연대고(年代考)』를 왕명으로 교정하였으며, 1769년 역시 왕명으로 울릉도의 지세와 물산을 그리고 조사하여 바쳤다. 시호는 문민(文敏)이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國朝榜目
江漢集(黃景源)

[집필자]

반윤홍(潘允洪)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