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성덕구(成德求)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131B355AD6CB1721X0
자(字)극세(克世)
생년1721(경종 1)
졸년1766(영조 42)
시대조선후기
본관창녕(昌寧)
활동분야문신 > 문신
성범석(成範錫)

[상세내용]

성덕구(成德求)
1721년(경종 1)∼1766년(영조 42). 조선 중기의 문신‧효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극세(克世). 좌승지 성범석(成範錫)의 아들이다.

1741년(영조 17) 사마시에 합격, 진사가 되고 1754년 익릉참봉(翼陵參奉)에 제수되었으며, 사헌부감찰을 거쳐 덕산현감이 되었다가 1762년에 관직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와 46세에 죽었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친상을 당하자 3년 동안 상복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그 똥을 맛보아 병의 차도를 살폈다. 상을 당하자 통곡한 나머지 실신하여 산소에서 들것으로 집으로 옮겼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죽었다.

지방관과 유생들이 그의 효행을 예조에 상신하여 1786년(정조 10) 정문을 세워 표창하고 복호(復戶: 요역을 면제함.)의 은전을 베풀었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耳溪集

[집필자]

이재호(李載琥)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