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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순(鄭宇淳)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815C6B0C21CB1720X0
자(字)군계(君啓)
생년1720(숙종 46)
졸년1789(정조 13)
시대조선후기
본관동래(東萊)
활동분야문신
정석세(鄭錫世)
생부정석제(鄭錫悌)

[상세내용]

정우순(鄭宇淳)
1720년(숙종 46)~1789년(정조 13)(주1)
졸년
東萊鄭氏文翼公派 卷之四를 참고하여 졸년을 추가함.
. 조선 중기 문신. 자는 군계(君啓)이다.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증조부는 정재악(鄭載岳)이고, 조부는 정희선(鄭希先)이다. 부친은 정석세(鄭錫世)이고, 생부는 정석제(鄭錫悌)이다. 외조부는 전주이씨 이홍(李泓)이고, 처부는 고령신씨 신형(申瀅)이다(주2)
처부
東萊鄭氏文翼公派 卷之四를 참고하여 외조, 처부를 추가함.
.

1772년(영조 48) 정시 문과에서 병과 9위로 급제하였다.

1776년(정조 즉위) 3월 정조의 즉위 직후 대사헌(大司憲) 이계(李溎) 등 삼사의 신하들이 전부 사판 삭제 및 문외 출송을 당하였는데, 이때 교리(校理)로 있던 정우순(鄭宇淳)도 함께 삭출되었다. 홍인한(洪麟漢)이 대리청정을 방해한 죄가 있는데 아무도 죄주기를 청하는 자가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곧 복직하여, 5월에는 삼사 합계에 참여하여 사도세자의 처벌을 주장한 신회(申晦)를 축출할 것을 상소하였고, 이어 6월에는 홍인한, 정후겸(鄭厚謙)을 국문할 때 불참한 한익모(韓翼謩)를 삭탈 관작하여 문외출송할 것을 상소하여 윤허를 받았다. 1777년(정조 1)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으로서 가뭄을 구제하기 위한 구언 상소를 올려 인재 선발을 공평히 할 것을 청하였다. 1786년(정조 10) 5월 공조참판(工曹參判)으로 재직 중 문효세자(文孝世子)의 시호를 정하는 일에 참여하여 시호를 온효(溫孝)로 정하였다. 1787년(정조 11) 성천부사(成川府使)로 재직할 때 양서(兩西)의 암행어사인 이곤수(李崑秀)의 서계로 법을 어기고 잘 다스리지 못한다 하여 신문받고 죄를 받았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집필자]

나영훈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