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소(兪漢蕭)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20D55CC18CB1707X0 |
자(字) | 여인(汝人) |
생년 | 1718(숙종 44) |
졸년 | 1769(영조 45)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기계(杞溪)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상세내용]
유한소(兪漢蕭)
1718년(숙종 44)∼1769년(영조 45).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여인(汝人)이다. 본관은 기계(杞溪)이다.
증조부는 유명뢰(兪命賚)이고, 조부는 유광기(兪廣基)이다. 부친 유언탁(兪彦鐸)과 모친 조휘벽(趙輝璧)의 딸 풍양조씨(豊壤趙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처부는 김원태(金元泰)이다.
1740년(영조 16)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시강원설서‧사헌부지평 등을 지냈다. 1749년(영조 25) 정언재직 시절 임금이 학문과 정사에 힘써야한다는 소를 올리고 시정에 관해 논하였다. 영조는 이 발언이 사단(事端)을 발생시킬 수 있다하여 관직을 교체시켰다. 이후 정언‧문학‧사헌부지평‧장례원판결사 등을 역임하였다. 1749년 승지로 있으면서 사도세자의 일을 보고하지 않았다가 파직되었으나 다시 대사간(大司諫)으로 기용된 후 대사헌(大司憲)‧예조참판 등을 지냈다.
증조부는 유명뢰(兪命賚)이고, 조부는 유광기(兪廣基)이다. 부친 유언탁(兪彦鐸)과 모친 조휘벽(趙輝璧)의 딸 풍양조씨(豊壤趙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처부는 김원태(金元泰)이다.
1740년(영조 16)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시강원설서‧사헌부지평 등을 지냈다. 1749년(영조 25) 정언재직 시절 임금이 학문과 정사에 힘써야한다는 소를 올리고 시정에 관해 논하였다. 영조는 이 발언이 사단(事端)을 발생시킬 수 있다하여 관직을 교체시켰다. 이후 정언‧문학‧사헌부지평‧장례원판결사 등을 역임하였다. 1749년 승지로 있으면서 사도세자의 일을 보고하지 않았다가 파직되었으나 다시 대사간(大司諫)으로 기용된 후 대사헌(大司憲)‧예조참판 등을 지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國朝榜目
國朝榜目
[집필자]
김혜영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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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