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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관제(安寬濟)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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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율경(栗卿)
생년1717(숙종 43)
졸년1789(정조 13)
시대조선후기
본관순흥(順興)
활동분야문신
안개(安鍇)

[상세내용]

안관제(安寬濟)
1717년(숙종 43)~1789년(정조 13).(주1)
졸년
『순흥안씨족보(順興安氏族譜)』(1824) 권6 pp.61a : [安鍇(安錞)]-安寬濟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율경(栗卿)이다.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증조부는 안식(安烒)이고, 조부는 안시상(安時相)이며, 부친은 안개(安鍇)이다. 외조부는 이언경(李彦經)이고, 처부는 김시엽(金始燁)이다. 동생은 안대제(安大濟)와 안겸제(安兼濟)이다.

43세의 나이에 1759년(영조 35) 식년시에 병과 8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양산군수(梁山郡守)로 재직하던 1775년(영조 51)에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로 특별히 임명되었다. 이듬해 관서어사(關西御史)로 파견되었는데, 이때 백성의 가요(歌謠)를 서계(書啓)에 한글로 써넣어 비판을 받았다. 1755년(영조 31)에 일어났던 을해옥사(乙亥獄事) 이후에 아들이 유봉휘(柳鳳輝)의 증손서(曾孫婿)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홍문관교리가 되었다는 사헌부(司憲府)의 탄핵을 받고 사천현(泗川縣)에 유배되었다. 아울러 동생 전라감사 안겸제는 감사 재직 동안 정후겸(鄭厚謙)에게 경제적 지원을 했다는 비판을 받고 삭직되어 유배되었다. 1777년(정조 1) 안관제(安寬濟)를 석방하라는 명이 있었으나 대사간(大司諫)의 비판에 따라 양산(梁山)에서 다른 도로 이배되었다. 1782년(정조 6) 정조가 영조를 종묘의 세실(世室)로 모시는 경사를 맞아 방면되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正祖實錄
國朝文科榜目

[집필자]

이동인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