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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취원(朴取源)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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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숙봉(叔逢)
생년1716(숙종 42)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반남(潘南)
활동분야문신
박사설(朴師卨)

[상세내용]

박취원(朴取源)
1716년(숙종 42)~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숙봉(叔逢)이며, 본관은 반남(潘南)이다.

증조부는 박태두(朴泰斗)이고, 조부는 박필하(朴弼夏)이며, 부친은 박사설(朴師卨)이다.

1755년(영조 31) 정시 문과에서 병과 4위로 급제하였고, 이후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홍문관응교(弘文館應敎) 등 삼사의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은계찰방(銀溪察訪) 등 외직도 수행하였다. 이후 사간원사간(司諫院司諫)을 거쳐 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에까지 이르렀다.

1769년(영조 45)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 홍상간(洪相簡)‧겸사서(兼司書) 이상악(李商岳) 등과 함께 호서(湖西)에 찬배되도록 명을 받았는데, 옥당(玉堂)의 관원으로서 교만하게 외방에 있다고 속이고 왕이 부르는 명을 어기고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771년(영조 47)에는 기장(機張)에 정배되었는데, 이는 패초(牌招)를 어겼기 때문이었다. 1772년(영조 48) 9월 대사간에 제수된 지 하루만에 파직되었고, 대정현(大靜縣)에 유배되어 영구히 서민으로 살게 되었다. 이는 양사가 합계하는 것이 매우 엄중한 것인데 예에 크게 그릇되게 단지 ‘청(請)’자 이하만 써서 가지고 와서 영조를 매우 놀라게 하였기 때문이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집필자]

나영훈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