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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숙(嚴璹)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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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인()
자(字)유문(孺文)
호(號)오서(梧西)
시호(諡號)숙헌(肅憲)
생년1716(숙종 42)
졸년1786(정조 10)
시대조선후기
본관영월(寧越)
활동분야문신 > 문신
엄경수(嚴慶遂)
외조부임순원(任舜元)
저서『연행록(燕行錄)』

[관련정보]

[상세내용]

엄숙(嚴璹)
1716년(숙종 42)∼1786년(정조 10).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영월(寧越). 초명은 엄인(嚴璘), 자는 유문(孺文), 호는 오서(梧西). 수찬 엄경수(嚴慶遂)의 아들이며, 모친은 임순원(任舜元)의 딸이다.

1753년(영조 29)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757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교리승지 등을 지냈고 1771년 형조참판을 거쳐 대사간이 되었으며, 이듬해에는 대사헌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때 그는 부당하게 업무처리를 하여 관원으로서의 위신을 추락시킨 지평 이득화(李得華)좌참찬 신회(申晦) 등을 파직하도록 하였으며, 그로부터 3년 뒤에는 전국의 한전(旱田)에 급재(給災)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평소에 늘 책읽기를 좋아하였는데, 이러한 것과는 달리 성격이 단호한 일면도 지니고 있어 한번 그가 상주(上奏)할 때는 상하의 관원들이 모두 경청하였다.

더욱이 그가 일찍 한원(翰院)에서 봉직하고 있을 때 대신 김상로(金尙魯)가 체통에 어긋나는 행동을 취하자 신랄하게 규탄함으로써 시정하도록 하였다.

1773년 동지부사(冬至副使)중국에 들어가 크게 활약한 결과 외교적 성과를 거두고 이듬해 귀국하였는데, 돌아와서는 그간에 기록한 일기를 간행하였으며, 늙어서는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저서로는 『연행록(燕行錄)』이 있다. 시호는 숙헌(肅憲)이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김호종(金昊鍾)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