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선덕(呂善德)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5ECC120B355B1715X0 |
자(字) | 민중(敏中) |
생년 | 1715(숙종 41)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함양(咸陽) |
활동분야 | 문신 |

부 | 여사주(呂師周) |

[관련정보]
[상세내용]
여선덕(呂善德)
1715년(숙종 41)~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민중(敏中)이다. 본관은 함양(咸陽)이다.
증조부는 여두제(呂斗齊)이고, 조부는 여필창(呂必昌)이다. 부친 가선대부(嘉善大夫) 행용양위부호군(行龍驤衛副護軍) 여사주(呂師周)와 모친 이동필(李東馝)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은 여선응(呂善應)‧여선복(呂善復)이다. 부인은 서명즙(徐命楫)의 딸이다.
1756년(영조 32) 식년시에서 진사 3등 18위로 합격하였고, 1763년(영조 39) 증광시 문과에서 병과 9위로 급제하였다.
1767년(영조 43)에 정언(正言)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장령(掌令)‧지평(持平) 등을 역임하였다.
1770년(영조 46)에는 무신(武臣)들을 멸시한다는 내용으로 탄핵을 받았다. 1771년(영조 47)에 어가(御駕)를 배종(陪從)한 공로로, 승지(承旨)에 임명되었다. 1783년(정조 7)에 공조참의(工曹參議)로 재직 중, 호조참판(戶曹參判) 조시준(趙時俊)‧병조참판(兵曹參判) 유의양(柳義養) 등 31인과 함께 임금에게 민사(民事)와 당시의 병폐를 논하는 상소를 올렸고,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증조부는 여두제(呂斗齊)이고, 조부는 여필창(呂必昌)이다. 부친 가선대부(嘉善大夫) 행용양위부호군(行龍驤衛副護軍) 여사주(呂師周)와 모친 이동필(李東馝)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은 여선응(呂善應)‧여선복(呂善復)이다. 부인은 서명즙(徐命楫)의 딸이다.
1756년(영조 32) 식년시에서 진사 3등 18위로 합격하였고, 1763년(영조 39) 증광시 문과에서 병과 9위로 급제하였다.
1767년(영조 43)에 정언(正言)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장령(掌令)‧지평(持平) 등을 역임하였다.
1770년(영조 46)에는 무신(武臣)들을 멸시한다는 내용으로 탄핵을 받았다. 1771년(영조 47)에 어가(御駕)를 배종(陪從)한 공로로, 승지(承旨)에 임명되었다. 1783년(정조 7)에 공조참의(工曹參議)로 재직 중, 호조참판(戶曹參判) 조시준(趙時俊)‧병조참판(兵曹參判) 유의양(柳義養) 등 31인과 함께 임금에게 민사(民事)와 당시의 병폐를 논하는 상소를 올렸고,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참고문헌]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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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