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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선(趙載選)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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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택지(擇之)
생년1713(숙종 39)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풍양(豊壤)
활동분야문신
조택명(趙宅命)
생부조철명(趙哲命)

[상세내용]

조재선(趙載選)
1713년(숙종 39)~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택지(擇之)이다. 본관은 풍양(豊壤)이고, 출신지는 한양(漢陽)이다. 부친은 조택명(趙宅命)이고, 생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전주진관병마동첨절제사(全州鎭管兵馬同僉節制使) 조철명(趙哲命)이다. 형은 조재우(趙載遇)이고, 동생은 조재술(趙載述)‧조재도(趙載道)이다.

1738년(영조 14) 식년시에 생원 3등 37위로 합격하였고, 신계현령(新溪縣令)‧밀양부사(密陽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1752년(영조 28) 효순현빈(孝純賢嬪)을 세자의 묘소에 부장(祔葬)할 때 집사(執事)의 자격으로 예식에 참여하여 말과 활을 하사받았다. 1754년(영조 30) 신계현령으로 재임하고 있었는데, 임금이 명릉(明陵)‧익릉(翼陵)‧경릉(敬陵)‧순회묘(順懷墓)‧창릉(昌陵)을 배알하고 돌아오는 길에 창릉점(昌陵店)에 이르렀을 때, 신계(新溪) 백성 수십 명이 조재선(趙載選)의 현령 직을 잉임(仍任)시켜 주기를 호소하였다. 왜냐하면 과거에 그가 치적(治績)은 있으나 시체를 검안할 때 격식을 갖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조에서 파직된 바 있기 때문이다. 임금이 백성들에게 물러가라 명하고 직접 처분할 것을 약속하였다. 이후 임금이 조재선의 잉임 여부를 대신들과 상의한 뒤 잉임을 명하였다. 1760년(영조 36) 밀양부사 시절 신병(身病)으로 가을 조련(操鍊)에 불참하고 좌수(座首)의 대행으로 행사를 진행하였다가 파직되었다.

[참고문헌]

司馬榜目英祖實錄

[집필자]

구은희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