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任珹)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784C131FFFFB1713X0 |
자(字) | 성진(聖眞) |
호(號) | 수암(羞庵) |
시호(諡號) | 충희(忠僖) |
생년 | 1713(숙종 39)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풍천(豊川)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임수헌(任守憲) |
[관련정보]
[상세내용]
임성(任珹)
1713년(숙종 39)∼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성진(聖眞), 호는 수암(羞庵). 임수헌(任守憲)의 아들이다.
1755년(영조 31) 진사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세자시강원설서가 되었고, 세자가 대리청정하게 되자 그 측근에서 보필하였으며, 1758년 정언이 된 이후 강직한 성격 탓으로 오랫동안 사간원의 관원을 역임하였다.
1762년 사서로 있을 때 나경언(羅景彦)이 세자의 비행을 상주하자 영조가 크게 노하여 세자를 죽이고자 하므로 극력 그 잘못을 빌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자가 죽은 뒤에는 보필을 소홀히 하였다는 이유로 파직당하였다. 뒤에 다시 지평에 기용되고, 교리‧승지를 지내다가 1775년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희(忠僖)이다.
1755년(영조 31) 진사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세자시강원설서가 되었고, 세자가 대리청정하게 되자 그 측근에서 보필하였으며, 1758년 정언이 된 이후 강직한 성격 탓으로 오랫동안 사간원의 관원을 역임하였다.
1762년 사서로 있을 때 나경언(羅景彦)이 세자의 비행을 상주하자 영조가 크게 노하여 세자를 죽이고자 하므로 극력 그 잘못을 빌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자가 죽은 뒤에는 보필을 소홀히 하였다는 이유로 파직당하였다. 뒤에 다시 지평에 기용되고, 교리‧승지를 지내다가 1775년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희(忠僖)이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正祖實錄
國朝榜目
恩坡遺稿
正祖實錄
國朝榜目
恩坡遺稿
[집필자]
김호종(金昊鍾)
명 : "성(珹)"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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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