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필리(姜必履)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C15D544B9ACB1713X0 |
자(字) | 석여(錫汝) |
생년 | 1713(숙종 39)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진주(晉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강선(姜橏) |
출생지 | 전라남도 강진 |
저서 | 『감저보(甘藷譜)』 |
[관련정보]
[상세내용]
강필리(姜必履)
1713년(숙종 39)∼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석여(錫汝). 전라남도 강진 출생. 부친은 진사 강선(姜橏)이다.
1747년(영조 23)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1762년 지평으로 사도세자(思悼世子)를 옹호하다가 삭직되었으나 곧 복직되어 도당록(都堂錄)에 뽑히고, 이어 홍문관교리로 남양어사(南陽御史)‧강화순심어사(江華巡審御史)로 나가는 등 영조의 신임을 받았다. 호조참의를 거쳐 1764년에 동래부사로 나갔는데, 이때 앞서 조엄(趙曮)이 일본에 통신사로 갔다가 대마도에서 가져온 고구마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심고 가꾸는 법을 연구, 지도하여 그 보급에 크게 기여하였다.
1767년 승정원동부승지에 이어 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감저보(甘藷譜)』가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1747년(영조 23)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1762년 지평으로 사도세자(思悼世子)를 옹호하다가 삭직되었으나 곧 복직되어 도당록(都堂錄)에 뽑히고, 이어 홍문관교리로 남양어사(南陽御史)‧강화순심어사(江華巡審御史)로 나가는 등 영조의 신임을 받았다. 호조참의를 거쳐 1764년에 동래부사로 나갔는데, 이때 앞서 조엄(趙曮)이 일본에 통신사로 갔다가 대마도에서 가져온 고구마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심고 가꾸는 법을 연구, 지도하여 그 보급에 크게 기여하였다.
1767년 승정원동부승지에 이어 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감저보(甘藷譜)』가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海行摠載
萬姓大同譜
海行摠載
萬姓大同譜
[집필자]
한영국(韓榮國)
대표명 | 강필리(姜必履) |
성명 | 강필리(姜必履) |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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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